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유철 Oct 15. 2024

나의 까만 호수 속

악당이 없는 우리네 이야기

내가 쓴 소설에는 악당이 등장한 적이 없다. 

주인공을 괴롭히고 가로막는 건, 늘 주인공 자신이었다.

서산동 보리마당

목포골목길문학축제에서 난생처음 북토크에 참여했다. 진행자가 내게 물었다. 

소설 ‘슈팅 라이크 쏘니’ 속 주인공들은 정점을 향해 나아가는데, 작가님이 생각하는 정점은 무엇인가요?

내가 생각하는 정점은 태도 속에 있다.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최선으로 승부에 임하는 것. 지고 있거나 불리하더라도 우리가 연습하고 노력하는 것들이 빛을 보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그게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정점이지 않을까. 스포츠 소설뿐만 아니라 우리네 인생에도 이 아름다운 광경은 곳곳에 있다. 아직 찾지 못했을 뿐, 너무 빨리 지나쳐서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 아름다운 광경은 승리의 축배 속에 있지 않다. 그 광경을 보려면 엔딩크레딧이 올라오길 기다려야 한다. 위너든 루저든 상관없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천천히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엔딩크레딧을 들여다 본적이 몇 번이나 될까. 

이기든 지든 엔딩크레딧은 올라온다. 그 안에는 그간의 노력이 담겨 있다. 아쉬운 패배 후에 그 순간이 있기까지 도움을 주신 분들 명단을 꼭 다시 읽어보자. 다 읽고 나면 졌다는 기분은 들지 않을 것이다.

서산동 어느 담벼락

어릴 적 친구들과 놀 때는 경쟁하는 놀이가 많았다. 매일매일 승자와 패자가 나뉘었다. 이긴 녀석들은 안 그래도 져서 기분이 안 좋은 아이들을 놀렸다. 하지만 나이를 먹은 우리는 더 이상 누군가의 실패를 놀리지 않는다. 우리 모두 져 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어느 밤에 친구들이랑 산책하다가

지난주 어느 비 오던 밤에 성빈이를 만났다. 같이 군생활 했던 고등학교 후배. 돈 벌어오겠다며 평창으로 직장을 옮겨서 얼굴 보기가 힘들었는데 쏟아지는 비를 뚫고 나를 만나러 왔다. 매운탕을 가운데 두고 여태 지나쳤을 근황을 나눴다. 성빈이는 언젠가부터 내가 부러웠다고 한다. 부러울 사람이 그렇게 없느냐고 물었다. 

좋은 직장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조건이 좋은 곳으로 이곳저곳 이직을 해봤지만, 지나고 보니 무엇이 중요한지 헷갈리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목포로 돌아올까 고민하고 있다고. 

형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니까 어찌 되든 해피엔딩이지 않냐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아닌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지는 게 괜찮은 건 아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잘하고 싶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기가 막히게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서투른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다. 

영암에 있는 마당 넓은 카페

이번주에 문학상 결과가 나온다. 지게 될까?

악당 없는 내 이야기에서, 내 마음을 힘들게 하는 건 정말 나일까?

어떤 결말이 나오든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끝까지 앉아서 올려다봐야겠다. 

도움을 주신 분들. 응원해 주신 분들. 있는 힘껏 최선을 다 해준 나에게 박수를.

이전 08화 나는 매일, 오늘을 문장으로 만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