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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철 Nov 26. 2024

코 끝에 겨울, 크리스마스

평범한 이야기는 특별할 수 있을까?

내게 크리스마스는 그리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교회에 가거나 데이트하기 좋은 날 정도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크리스마스가 되면 뭔가 해보지 않은 일을 하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샘솟는다.

2016년, 전역했던 해의 크리스마스에 혼자 버스를 타고 대구에 갔었다. 대구에 갔던 이유는  어반자카파 콘서트에 직접 가서 그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였다. 내 인생 첫 콘서트였다.

군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가 어반자카파의 ‘코 끝에 겨울’이었다. 

스물두 살, 당시에 대구에 혼자 갔던 건 내겐 큰 도전이었다. 지금은 운전해서 다른 지역에 놀러 가는 게 익숙해졌지만 그땐 다른 지역까지 가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게다가 혼자 가다니, 그나마 타지에 가본 곳들도 가까운 전남이나 멀리는 전주정도였다. 

그렇게 아침 일찍 대구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올라탔다. 도착한 후에는 시간이 남길래 김광석거리에 가서 간식 겸 점심으로 납작만두를 사 먹었다. 

쭈뼛쭈뼛 공연장에 입장했을 땐, 나만 혼자 왔나 싶어 여기저기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어반자카파를 보러 이곳까지 왔다는 게 실감 나기 시작하며 가슴이 쿵쾅거렸다. 노래를 들으며 몽글해졌던 감정선이 아직도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있는 것 같다.  

공연이 다 끝난 후에도 여운이 가시질 않아 숙소를 찾아 걸어 다니면서 어반자카파 노래를 계속 흥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난 아직도 크리스마스 하면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던 대구의 밤거리를 떠올린다.


요즘 들어 평범한 이야기와 특별한 이야기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 같다. 이전까지는 기발한 소재나 플롯을 통해 그 경계를 구분 짓곤 했는데 이제는 그게 맞나 의문이 생긴다. 

함께 글쓰기모임을 하는 친구들의 글을 읽으면서 생긴 의문이다. 그 소소한 이야기들을 읽을 때면 재밌는 글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게 된다. 

보통의 이야기들. 이들은 계속 글을 써오지도 않았다. 누구나 경험해 봤고 지나쳐왔을 감정들의 글을 읽으면, 어느 순간 그 안에 특별함이 읽힌다.


건설회사에서 일하는 글동료 한 명은 작업현장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 건설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주인공 김대리가 겪어 온 감정들을 소설로 풀어낸다. 그냥 본인 직장 이야기를 쓴 것일 텐데 읽다 보면 다음 이야기가 무지 궁금해진다. 

다른 글들도 마찬가지다. 본인 인생 일대기를 유년기, 청소년기, 20대로 나눠서 적은 글. 맥도날드에서 첫사회 생활을 했던 스무살을 기억하려 쓰는 글. 젊은 시절을 되돌아보는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 

함께 문장들을 고치고, 에피소드 정리를 하면서 글은 완성돼 간다. 이렇게 열심히 글을 써본 적이 처음이니 당연히 본인들에게는 소중한 작품이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신기한 건 나도 이젠 그 글들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다 평범한 이야기에 이렇게나 몰입하게 됐을까.

글을 쓸 때 항상 고민했다. 

궁금하지 않은 글은 아무도 읽지 않는다. 사람들은 소설 속 재밌는 장면이 나오기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자극적인 영상매체가 만연한 이 세상 속에서 내 글이 사라지지 않고 그 형태를 계속 유지하려면 초반부터 사람들을 빠져들게 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어릴 때 신경숙 작가의 책을 읽고 충격받은 적이 있다. 당시 읽었던 그 소설에는 판타지 요소와 자극적인 장면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읽는 사람을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들고 내 감정을 이리저리 뒤흔들었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난 그런 글을 쓸 수 없다. 어쩔 수 없으니 기발한 플롯을 찾아보자. 신박한 게 무엇이 있을까 하며 영화, 드라마, 소설, 만화 가리지 않고 소재들을 분석하고 고민했다. 

소설 초반부에 독자를 유혹할 기술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입부를 쓰는데 시간을 가장 많이 할애했다. 그러다 보니 결말까지 가서야 하고 싶었던 말을 겨우 꺼낼 수 있었다.

요즘은 글쓰기모임에서 만난 보통 사람들의 사소한 이야기에 푹 빠졌다. 평범한 글에 빠져들고 나니 다시 한번 특별한 이야기가 무엇일지 고민해 보게 된다. 

나는 여태 무슨 이야기를 찾고 있던 걸까?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에 무언가 놓치고 있던 건 아닐까?


소박한 내 이야기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소중해지는 날이 언젠가는 꼭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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