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지지 않는 이별 극복하기
어렸을 땐 서른 살쯤 되면 이별에 익숙해져있지 않을까 상상하곤 했다. 서른 살이 조금 넘은 지금의 나는 아직도 헤어져야 할 때면 마음이 아리다. 아쉽고 섭섭한 마음을 다정하게 표현하는 법만 늘었을 뿐이다.
진로체험 강사로 목상고에 다녀왔다. 열일곱, 열여덟 되는 아이들과 글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 쓰고 싶은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한 아이가 쓴 시가 기억에 남는다. 본인이 12월의 입장이 되어 시를 썼다.
다른 이에게 크리스마스 같은 축제를 주기 도하지만 이별할 준비도 해야 하는 저는 12월입니다.
맞다. 12월은 작별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는 사람 중에 드라마의 마지막 회는 절대 보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다. 이야기가 끝나는 게 싫다고 한다. 작가가 만든 그 세계와 인물들에게 정든 나머지 이야기가 끝나는 게 슬프다는 그 말에 공감이 됐다.
재밌는 건 어떻게든 결말을 모른 채 살기 위해 스포 당하지 않기 위해 인터넷기사도 조심조심 본다고..
작가가 마지막 회 원고 속 마지막문장에 마침표를 찍게 되면 모든 캐릭터들의 모든 삶은 끝나게 되는 걸까?
중학생 때 국어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책 한 권을 소개해주셨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예고편처럼 앞 내용만 조금 알려주셨는데 그 뒷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곧장 서점에 가서 그 책을 사 와서 읽었다. 집에 오자마자 책을 피고 앉은자리에서 소설을 다 읽었다. 내 인생 첫 장편소설이었다.
앉은자리에서 그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여운이 쉽게 가시질 않았다. 재준이가 죽고 혼자 남은 유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갔을까?
그때 나는 혼자 앉아 이야기의 여운을 느끼며 한참을 주인공 유미의 삶에 대해 생각했었다.
영화나 드라마는 인기가 많아 후속작을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후속작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쓴 작품들도 있지만 인기 때문에 없던 시나리오가 쓰이기도 한다. 만화의 경우 그런 작품이 꽤 있다.
드래곤볼 속 오공이는 엄청난 혈투 끝에 피콜로를 무찔렀지만 엄청난 인기 덕분에 계속해서 새로운 악당들을 만나야 했다. 프리저, 셀, 마인부우 등 더 강해진 악당들을 물리치고 오공이가 모두를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하고 나서야 드래곤볼은 막을 내린다.
제이크 질렌할이 출연한 ‘소스코드’라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 콜터는 8분짜리 가상세계에서 만 살 수 있다. 이미 불구의 몸이 된 콜터를 프로그램을 통해 가상세계로 보냈기에 그는 8분짜리 세계에 갇힌 것이다.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8분짜리 삶만 반복해서 살던 콜터는 모든 미션을 마치고 난 후에 이 모든 프로그램을 종료하고 자신을 죽여달라 한다. 그의 뜻대로 굿윈이 생명유지장치와 프로그램을 다 종료했다. 그리고 굿윈은 콜터에게서 문자를 받게 된다. 그가 프로그램 속 어딘가에서(평행세계) 살아있다는 걸 암시하는 내용이 나오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나도 항상 그런 상상을 한다. 소스코드 속 콜터처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어딘가의 평행세계에서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그래서 나는 이야기 속 주인공들의 일회성 승리를 바라지 않는다. 지금 닥친 위기만을 해결할 수 있는 스토리는 그 이야기가 끝나고 난 후에도 주인공이 잘 살고 있을지 확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한 모든 이야기가 좋은 사람들의 해피엔딩이 됐으면 한다.
마지막 회를 못 본다던 그 사람과 ‘소스코드’를 보고 이야기를 나눠보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모든 이야기는 결말 후에도 항상 우리 마음속에 함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