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어딘가에서 만나게 될 당신과 나
위로는 어떻게 해주는 걸까? 위로라는 건 참 복잡한 영역이라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일단 나부터가 그렇다.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힘이 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본 게 언제인지 잘 생각이 안나는 정도다. 무슨 말을 해야 위로가 되는 걸까.
그 누가 나 혼자만의 고독함을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이런 생각 때문인지는 몰라도 누군가 내게 건넨 위로의 말들은 금방 한 귀로 흘러내려가 흩어져버린다.
나도 힘들어하는 다른 사람의 속풀이를 들을 때 말을 잘 보태지 않는 편이다. 그냥 하고 싶은 말을 주저리주저리 다 하도록 묵묵히 견디며 들어준다.
감정표현에 서툰 편이다. 내 안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올라왔다 내려가고, 요동칠 때도 많다. 하지만 그것들은 밖으로 표출되지 않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온갖 생각과 감정들이 마음속에 일어나고, 그것들이 내 몸 밖으로 표출되기까지의 과정을 나이가 먹을수록 잊어 가는 것 같다. 표현을 자꾸만 아끼게 된다.
군생활을 할 때 편지를 정말 많이 썼다. 입대 전에는 말을 잘 안 했는데, 군대에서 고생해보고 나니 가족,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졌다. 그간 고마웠던 것들, 미안했던 것들, 말로 못했던 것들을 열심히 편지지에 적었다.
그래서 결심했었다. 이제는 서툴더라도 꼭 마음을 표현하며 살자고. 고마울 때는 고맙다고 말하고, 미안할 때는 꼭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그래서 요즘에는 문득 떠오른 말들을 바로 표현하는 편이다. 그런데 표현을 한다고 하는데도 자연스럽지는 않은 모양이다. 영화자막이 어긋난 것처럼 내 표현과 행동이 싱크가 맞지 않아 영혼이 없냐는 말을 종종 듣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슬픔 속에 빠져서 마음을 가누기 힘들 때마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을 많이 봤다. 방에 틀어박혀서 결말을 볼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장편소설을 하루종일 방에서 다 읽거나, 드라마를 1편부터 마지막화까지 하룻밤새 앉은자리에서 다 봤다.
고달픈 현실과 단절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곳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으면 마음이 한결 편했던 것 같다. 이야기가 다 끝나버리면 다른 이야기를 찾기를 반복했다. 그런 슬픔극복 버튼이 습관이 돼서 그런지 내가 마주한 어려움에 대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건 영 마음이 편치 않다.
말해봤자 무엇이 달라질까.
그런데 소설을 쓰다 보니 생각이 바뀌게 됐다. 여태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받았음을 깨달았다.
내가 쓴 소설 속 모든 등장인물들은 나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 삶의 선택들 모두 내가 결정한 것이다. 그 글 자체가 또 다른 누군가와의 소통의 창이었다. 사람에게 위로받은 게 아니라 혼자 극복하고 있다 생각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내 마음을 붙들어준 건 그동안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이었다.
모든 이야기를 보면 그렇다. 주인공은 처음에는 숨겨진 조력자들을 모른다. 그들은 딱히 숨어있지도 않고 옆에서 묵묵히 주인공의 중심을 지탱해 준다. 이야기 속 사람들은 조력자들의 응원을 결말쯤에나 가서야 깨닫게 되지만 나는 벌써 알아차렸으니 다행이지 않을까. 더 재밌는 이야기가 되기를 바라본다.
나에게 소설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거나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이다.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지 않을까. 계속해서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들로 다른 이의 쓸쓸함을 가볍게 해주고 싶다.
이야기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든 존재한다. 언제라도, 누구라도 위로해 줄 수 있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글을 써나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닿을 누군가의 마음을 위해. 매주 연재해 나가는 이 브런치글도 그렇다. 지금의 내가 마주한 고민들과 삶의 갈림길의 이야기들, 이걸 누군가 읽게 됐을 때 그의 인생에도 의미 있는 만남이 되기를.
내가 적은 것들은 영원히 누군가를 위해줄 이야기다. 누군가의 책장이나 도서관 어딘가에서 발견될 것이다. 꿈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용기를 주고, 혼자 있는 사람들의 쓸쓸함을 덜어주고 싶다.
나의 이야기를 만나게 될 모든 인생을 성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