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 잘 들으면 나도 얌전한 사람이야.
잦은 호통에 자책감이 쌓인다. 아이들에게 항상 사랑으로 감싸주고 좋은 소리만 들려주고 싶은데, 쓴소리를 멈출 수가 없다. 아들님, 따님께서는 도통 말을 듣지 않아 똑같은 잔소리를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게 된다. 부드럽게 말하고 싶은데 목소리 톤이 점점 올라간다. 음량도 커진다. 욱하고 내뱉는 큰소리에 울화를 실린다. 이렇게 쏟아내도 딱히 개운하진 않다.
감정을 표출할수록 찜찜함만 커진다. 나라고 이러고 싶을까. 듣기 싫은 소리는 내 귀로도 되돌아온다. 당연히 듣기 싫고 말하기도 싫다. 한 번 말하면 그만해 줬으면 좋겠는데 이 녀석들은 들을 생각을 안 한다.
분명 대답은 한다. 하지 말라면 알겠다고, 그만하라면 알겠다고, 조심하라면 알겠다고 대답은 한다. 그런데 대답만 한다.
뛰지 말라는 말에 뛰면서 대답한다. 한 번에 듣지 않을 걸 이미 알고 있기에 메아리처럼 같은 말을 반복한다.
"뛰지 마. 뛰지 말라고. 천천히 천천히."
대답 역시 메아리처럼 돌아온다.
"네. 알겠어. 알았다고." 알겠다는 녀석의 발이 여전히 뛰고 있다. 상황이 이모양인데 어떻게 침착하냐고! 한탄하듯 한숨에 섞인 샤우팅 후에야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조금 멀어졌다 싶으면 다시 뛴다.
하아... 깊은 현타에 잔소리할 마음이 사라진다. 그저 한숨만 뻑뻑 뱉으며 세상 모든 허무함을 온몸으로 느낀다. 아무리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지만 이런 식은 아니지 않나? 뭔가 단단히 잘못 됐다.
녀석들이 더 어린 시절엔 별로 화나지 않았다. 제대로 말귀를 못 알아들을 땐 내가 직접 몸을 움직여 제지했다. 위험한 물건이 있으면 직접 치우고, 쿵쿵거린다 싶으면 직접 안아 들고 놀아줬다. 작은 강아지를 키우듯 내가 직접 통제했다.
그런데 녀석들의 말이 능숙해지면서부터 말로만 하게 됐다. 당연히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하고 나니 몸은 저절로 굳어졌다. 말을 안 들으면 예전처럼 직접 나서면 될 것을, 애들이 말을 들을 때까지 끝까지 말만 한다.
바라는 게 있으니 아쉬움이 생긴다. 바라는걸 내가 처리하는 게 아니라 남이(아이들이) 해주길 바라니 속만 터진다. 이게 참, 누구 잘못이라고 해야 할까? 마냥 애들이 말썽이라고 따지기도 뭐 하다. 내가 너무 과한 기대를 조건으로 아이들에게 채찍질하고 있는 건 아닐까?
최근 몇 년을 돌아보면 나도 참 게으르게 늘어져있었다. 한 살 한 살 먹을 때마다 몸이 팍팍 늙는다는 변명을 하기엔 아직 까마득한 나이도 아니다. 그냥 핑계와 핑계가 쌓여 무겁게 몸을 누르고 있을 뿐. 사실 내가 다 해결할 수 있던 일들이다. 내가 직접 녀석들과 함께 한다면 말도 잘 듣고 함께라서 더 큰 행복을 느꼈을 거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참 자업자득이네. 면목이 없다.
애들한테나 폰 못 만지게 할 게 아니라, 나부터 손을 비우고 가족과 함께해야겠다. 이렇게 바뀔 테니 너네도 말 좀 한 번에 들어줘라. 이 녀석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