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극N의 육아

돌다리도 두들겨보다가 깨부술 판이다.

신중한 것도 적당히!

by 유가

신중해서 안 좋을 일이 있을까?


많다. 생각보다 너무 많다.

필요이상으로 신중한 성격 탓에 아무것도 못한다. 쓸데없는 공상으로 가득한 극 N성격 탓에 일어나지도 않을 일까지 모두 싸잡아서 걱정을 한다. 잘하려고 걱정을 하는 건지, 걱정을 하려고 일을 벌이는 건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안 좋은 결과가 예상될 때까지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


위기를 파악해 두는 건 좋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내비게이션을 보는 것과 같으니까. 그런데 위기에 겁먹어서 나아가질 못한다. 맹수가 들어있는 100개의 방을 피해 문을 열고 나아가야 하는데, 어느 문이 안전한지 정답지를 손에 들고서도 이곳에 맹수와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이 두려워 문을 못 여는 바보와 같다.

"실수로 맹수가 있는 문을 열면 어떡해!"

정답지를 보면서 열면 되잖아... 하지도 않아도 될 걱정을 가지고 난 이런 스타일이다 보니 애들까지도 비슷한 면모를 보인다.


효니는 행동이 조심스럽다. 소심한 건 아니다. 처음 본 사람도 눈치챌 만큼 E성이 뚜렷한 핵인싸 스타일인데, 게임을 하거나 문제를 풀 때 보면 여간 신중한 게 아니다. 1억 상금 퀴즈대회에서 마지막 한 문제를 앞둔 사람처럼 고심하며 문제를 푼다.(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수학문제라면 하나씩 대입해 보면서 식을 풀면 될 것이고, 게임이라면 에너지를 깎아가면서 하면 될 것인데, 뭐든지 한 번에 해내려고 뜸을 들인다. 결국 수학은 암산으로 정리하다가 틀리고, 게임은 타이밍을 놓쳐 실패한다. 아무렇게나 하는 것보다도 못하다. 기회 자체를 날려버리니까. 욕심이 과하다.


혀기는 조금 다르다. 우리 가족 중에선 가장 행동파다. 일단 해본다. 눌러보고 만져본다. 그런데 자신의 계획이 조금도 틀어져서는 안 된다. 계획을 세우는 일에는 덜 신중한 것 같은데, 계획을 따르는 일엔 세상 신중하다. 살짝만 삐끗해도 감정이 폭발한다. 화를 내던 눈물이 쏟던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의 규칙을 관철한다.

용암 위에 연결된 외줄을 타는 사람처럼 몹시 예민하다. 그럴 거면 우회로를 찾아볼 만큼의 신중함이 더해지면 좋을 것을... 엄한데 신중에너지를 소비한다.


녀석들의 답답한 모습을 보면서도 참는 수밖에 없다. 누굴 탓하겠는가. 다 지들 아빠 닮고 엄마 닮은 것을. 당장에 내 코가 석자이기 때문에 어디에 하소연도 못한다.

이 나이가 될 때까지 극 N인 나를 보면, 나는 이미 늦었다. 평생을 이렇게 살 테지. 그러니 애들은 달라지면 좋겠다. '나는 못했으니 너네가 대신해라'라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애들에겐 얼마나 듣기 싫은지 안다. 그래서 너희 알아서 변하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애들의 걱정까지 내가 다 짊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신중한 성격이 얼마나 피곤한지는 뼈저리게 알고 있기에, 녀석들은 조금 더 자유롭게 도전하고 실패하며 다시 도전하는 삶을 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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