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을 좋아하는 나는 가족들과 함께 캠핑을 한다. 코로나가 터지고 캠핑 붐이 일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캠핑. 특별한 무엇을 하지 않아도 '캠핑'이라는 단어 하나로 뭔가 뭉글뭉글해진다. 장작을 쌓아 불을 피우고 솥뚜껑만 한 그리들에 커다란 고기를 덩어리째 구우며 옆에는 썰지 않은 김치를 촤아악- 굽는 건 '로망'이라는 단어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식후에는 마시멜로우를 구워 먹고 대충 던져 넣은 고구마나 쥐포를 뜯는다. 어른들에게도 설레는 일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대체불가능한 경험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캠핑은 사서고생이다. 캠핑장 예약부터 쉽지 않다. 각각의 캠핑장들을 살피고 비교하며 서로 다른 예약오픈일을 확인하고, 알람까지 맞춰놔야 겨우 캠핑장을 선점할 수 있다. 이게 생각보다 치열하다. 조금만 유명하다 싶으면 예약오픈하는 순간 이미 예약이 완료돼 있다. 아이돌 콘서트 티켓팅이 이런 느낌인가? 결국 적당한 캠핑장... 아니, 빈자리가 남아있는 캠핑장을 가게 된다.
예약을 했다면 이제 짐을 싸는 게 문제다. 차에 캠핑용품을 집어넣는 걸 '테트리스한다'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빈틈없이 꾸역꾸역 넣어야 겨우 짐을 챙길 수 있다. 호텔에 가는 것도 아니고 좀 부족하고 불편한 게 캠핑이다. 나라고 그걸 모르겠는가? 엄청난 짐을 그득그득 챙겨가는 것도 아닌데 늘 짐 싣기가 제일 부담된다. 이건 또 어디에 넣어야 하나 답답해하며 다 싣고 나면 아직 안 들어간 짐이 꼭 옆에 남는다. 으휴 속 터져!
어찌어찌 캠핑장에 도착하면 끝일까? 땀내가며 텐트 치고, 짐정리하고, 조금 앉을까 싶으면 불 피고 식사준비에, 먹고 나면 설거지하고 좀 앉는가 싶다가 취침이다. 아침에는 느긋하게 일어나지도 못한다. 이른 아침부터 시끌한 소리에 늦잠은 물 건너가고, 1박 2일이라면 대충아침 끼니만 때우고 곧바로 짐정리에 텐트 접고 다시 차에 테트리스 시작. 집에 돌아와 짐을 다 내리는 고생의 반복이다.
대체 누가 캠핑 앞에 '힐링'이란 단어를 붙인 걸까? 커플캠핑이라면 모르겠다. 최대한 짐을 줄여 분위기를 먹고 마시고 온다면 힐링캠핑이 될 수 있을지도.
하지만 어린아이 두 명이 추가된 것만으로도 짐도 식량도 신경 쓸 일도 늘어나 킬링 캠핑이 되고 만다.
그럼에도 이 생고생을 사서 하는 이유. 힘들어도 로망은 로망이다. 캠핑을 떠나기 전 불안감과 닮은 설렘. 캠핑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일상에서 벗어난 기분. 그리고 무엇보다 캠핑을 좋아하는 아이들.
사실 캠핑장 오면 하루종일 방방이만 탄다. 이럴 거면 키즈카페에 가는 게 여러모로 좋은 판단이 아닐까? 가깝고, 고생도 덜하고, 다른 놀이시설도 더 많고.
그럼에도 둘 중에 캠핑장을 가고 싶다 말한다. 하나만 구워 먹고 떠나가는 마시멜로우도 좋고, 다른 텐트 아이들과 친해져 노는 것도 좋단다. 어른의 경험과 지혜로 예측하는 것 외에, 몸소 체험해야만 느낄 수 있는 재미는 다른 듯하다. 어릴 적 왜 그렇게 어른들 이야기를 안 듣고 노는 게 재미있었는지 조금 알 것 같다.
어쨌건 재미는 애들 몫. 고생은 내 몫이다. 잠드는 순간부터 다음날 짐정리 할 걱정이 든다.
한 번은 2박 3일로 예약을 하고, 갑작스러운 기상면화로 이튿날 저녁부터 많은 비가 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비를 맞으며 짐정리하는 것도 문제지만, 집에 돌아가 텐트를 펼쳐 말리고 짐들을 살필 걱정이 크게 들었다. 결국 1박만 하고 둘째 날 저녁 어둑해진 시간에 짐을 싸아 돌아왔다. 모든 짐을 다 넣고 트렁크를 닫는 순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 내 판단을 자축하며 기뻐했다.
하지만 애들 마음은 달랐다. 고생을 하지 않는 녀석들에겐 그저 놀 시간이 줄어들고, 2번 자기로 한 캠핑이 고작 1번밖에 자지 못한 아쉬운 캠핑으로 남았다.
한 달 정도 후 1박 캠핑을 가고 겨울이 찾아와 한참을 쉬었다. 겨울이 지나는 몇 달간 한 번씩 캠핑 가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면서 꼭 하는 이야기가 "그때 한 번 자고 왔잖아"라는 말이었다. 애들에겐 그게 엄청나게 큰 사건이었나 보다. 어쩔 수 없었다 설득해 봐도 먹히지도 않는다.
결국 봄까지 버텨 5달여 만에 캠핑을 다녀왔다. 2박 3일로. 금요일 퇴근 후 밤늦게 가는 캠핑이라 사실상 하루는 놀지도 못하는 반쪽짜리 2박 3일. 아이들이 실망할까 봐 미리부터 몇 번씩 상황을 말해줬다. 금요일엔 가자마자 텐트 치고 바로 자는 거라고. 그래도 애들은 좋은가보다. 시간 따윈 안중에 없고 몇 번 식이나 "이번에 두 번 자고 오는 거 맞지? 저번에 한 번만 잤잖아."를 물어본다. 애들이 정말 원하는 건 꽉 찬 완벽함 보다, 어떤 사실인 듯하다. '그저 그랬었다'라고 하는 사실증명.
소름 돋게도 이번 캠핑에도 마지막날 비가 왔다. 캠핑 가기 전 4일째부터 일기예보가 변하더니 기어코 비가 와버렸다. 또다시 생각이 많아졌지만 꾹 참고 다녀왔다. 차라리 포기하 고나니, 비를 맞으며 텐트를 접는 게 썩 고행도 아니었다. 물론 장대비처럼 쏟아졌다면 또 달랐겠지만.
어른이 되면서 점점 완벽에 대한 강박이 생기는 것 같다. 하자는 없어야 하고 아쉬움도 없어야 하고, 한 톨의 먼지조차 용납 못하는 그런 강박.
조금 더러워도, 조금 부족해도, 조금 아쉬워도 상관없는데. 다 내려놓으면 더 편히 즐길 수 있는데. 연륜이 쌓일수록 많이 채워지는 게 아니라, 가리고 덮혀져서 보지 못하는 것도 생긴다. 이 녀석들이 몇 달 동안 날 들들 볶으며 1박에 대한 죄책감을 심어준 건, 내가 덮어두었던 행복을 보여주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어린 시절 비 오는 날이면 학교 운동장에 나와서 축구하며 놀았던 기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