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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Mar 23. 2023

공부 못해도 돼. 바르게만 자라다오.

부모가 하는 가장 큰 거짓말.

이번에 초2가 된 효니는 겨울방학 동안 집에서 공부를 했다. 서점에서 2학년 1학기 수학과 국어 문제집을 사서 평일동안 매일 2장씩 문제를 풀었다. 나름의 사교육이다.


나는 교육에 그렇게 큰 욕심이 없다. 타고난 머리가 좋아서 그걸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모르지만 안 되는 걸 억지로 채찍질하며 굳이 1등을 향해 내달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매일밤 코피 쏟아가며 공부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시험기간 동안에는 공부하는 정도. 성적이 높으면야 좋겠지만, 할 일은 했는데 점수가 낮다면 그건 그거대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부모들이 보면 무식한 소리 한다고 그럴지 모르겠다.

옛날처럼 공부 잘해서 대학가야 만 잘 먹고 잘 사는 시대가 아니니까.

그저 다른 방향으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괜한 억지를 부리며 고통받질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 또한 자식이 행복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집에서 문제집을 푸는 게 딱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라고 생각했다. 마냥 뛰어놀다가 학교에서 아무것도 모르면 안 되니까, 하루종일 유튜브를 보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생산적이다. 두장 두 장 푸는 게 얼마나 걸리겠는가. 후딱 풀고 놀면 되지.


그렇게 문제집 네 장을 푸는데 두세 시간이 넘어간다. 


국어는 제법 빠르다. 말을 빨리 떼고 쉬지 않고 움직이는 입 때문인지 국어는 어지간하면 다 맞춘다. 속도도 빠르고 대부분 정답이다 보니 국어는 부담 없이 집중한다.


문제는 수학. 이게 참 빠르면 30분 안에도 다 푸는데 조금만 막히면 기약이 없다. 바로 전날 100점을 맞았던 문제도 다음날이면 다 틀리는 경우도 있다. 문제가 크게 어려워지지 않는데, 집중력이 떨어지는 순간 그대로 폭망이다.


덧셈 뺄셈을 배운다. 숫자 하나하나 계산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헌데 숫자 단위가 하나라도 더 붙으면 머리가 굳는 모양이다.  

'34+3=?'이라는 문제가 있다고 치자.  4+3은 잘한다. 그리고 십의 자리 숫자인 3을 그대로 나오면 답을 쉽게 맞힌다. 설명해 주고 다음문제로 넘어가는 순간. 일의 자리를 먼저 계산하는 게 아니라 전체숫자를 계산하려 한다.

설명이 애매하니 다시 예를 들어보자. 

42+6 = 40+(2+6)이라고 볼 수 있다. 쉽게 십의 자리랑 일의 자리를 분리했다. 그러면 그냥 숫자를 하나씩 계산하면 끝날일인데, 굳이 42를 한 번에 계산하려 하니 골치가 아프다. 

암산이 아니라 여백에 계산식을 쓰면서 하는데도 굳이 머릿속에서 한 번에 더하려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헷갈리지. 그나마 십의자리는 나은 편이다. 세 자리 이상으로 넘어가니 더 어려워한다.


이런 문제는 반복적으로 접하고, 계산식으로 하는 걸 강조하다 보니 자연히 풀 수 있게 됐다.(시간이 답이다.)


사실 더 큰 문제는 문제를 이해 못 하는 게 크다. 

처음에 문제를 보고 턱을 괴며 한참을 있길래 딴짓한다고 생각하고 주의를 줬다. 눈치를 보는 듯 하지만 그 상태로 여전히 멍 때리고 있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하기 싫으면 빨리 풀고 놀면 될 것을 질질 끌면 더 오래 스트레스받고 노는 시간도 줄어들 텐데. 


이렇게 타는 속을 진정시키며 문제를 살폈다.

[주머니에 구슬이 3개씩 5묶음 있다. 이를 그림으로 그리고 식으로 나타내시오.]

"이거 문제가 무슨 말인지 알아?"

내 물음에 한껏 우울한 눈빛으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묶음'이라는 개념을 몰랐다. 당연하지. 이건 2학년 문제고 배운 적 없는 개념이니까. 


모르면 물어보면 될 것인데 의기소침해진 효니는 혼자 속으로 삼키고 있다. 거참.

내겐 너무나 당연한 것이 효니에겐 너무나 낯선 것이다. 이 갭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만 메말라 간다. 현실과 부모 욕심 사이의 줄다리기.


괜찮다. 당연하다. 이야기를 해주고 개념에  대한 걸 설명해 줬다. 문제집 위로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속으로 그렇게나 서운한 모양이다. 괜히 혼날까 봐 무서운 건지, 아니면 스스로가 너무 답답한 건지, 어려운데 계속 풀어야 하는 이 상황이 싫은 건지...

그렇다고 그만두진 않는다. 하나둘씩 다 봐주다가는 흐지부지 될 테니, 마음 아파도 부모가 중심을 잡아야지. 불쌍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억지로 덮으며 다음 문제를 풀라고 한다. 서로가 힘든 시간이다.


미안하다. 부모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공부를 썩 잘하지 못했다. 그에 비하면 효니는 "내 자식 천재인가 봐!"하고 호들갑 떨 정도로 영특하다. 어릴 적부터 이것저것 외우는 건 타고났고, 숫자나 한글도 가르치려고 큰 노력을 해본 적 없었다. 호기심이 많은 효니가 여기저기서 듣고 배워서 스스로 깨우쳤다. 그런 효니를 공부로 닦달하는 건 염치없고 부끄럽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부모인데. 공부는 하라고 시켜야지. 


틀린 문제는 지우고 다시 풀어보게 시킨다. 설명해 주기 전에 일단 스스로 한번 더 생각해 보게끔 옆에서 지켜만 본다. 거참, 이 얼마나 잔인한 고문인가. 몰랐으니 틀렸을 텐데, 모르는 걸 다시 해보라고 시키고 있으니. 

분명 나는 교육에 큰 욕심이 없는 사람인데, 자꾸만자꾸만 공부를 닦달하고 있다. 


생각과 행동에서 오는 괴리는 나 자신도 지치게 한다. 부모로서 해야 할 도리? 인간으로서의 연민? 딜레마 한가운데서 꺾이지 않기 위해 정신을 붙잡는 건 생각보다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효니보다 힘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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