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니와 혀기의 취침시간은 대충 10시 전이다. 잠들기 30분 전부터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당사자들은 노는 재미에 빠져 잘 생각을 안 하기 때문에 내가 시계를 확인하고 "이제 씻자."라는 명령어를 입력해야 한다. 알람을 맞춰둔 게 아니기 때문에 유동적인 편차는 존재한다.
어제는 날 좋은 일요일. 하루종일 밖에 나가 놀다가 마트에서 장까지 봐온 탓에 대략 9시 반이 넘어 집에 도착했다. 다음날 곧바로 학교(어린이집)에 가야 하기에 늦장부릴 시간 없이 잘 준비를 한다.
장 거리를 정리하면서 애들한테 옷 벗고 세수부터 하고 있으라고 한다. 곧장 전라가 된 녀석들이 서로를 보고 장난 가득한 발걸음으로 화장실에 들어간다.
냉장고를 다 정리하고, 녀석들이 널부러 놓은 옷가지들을 주워 세탁통에 넣고, 내 허물도 함께 벗어 넣는다. 옷장에서 씻고 입을 옷을 꺼내며 빨리빨리 취침루틴을 실행한다.
"@#$^%!#$~!!"
그런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화장실이다. 물을 틀었다 막았다 하는 소리와 함께 웃음소리가 넘치는 걸 보니 또 한껏 장난인가 보다. 시간도 늦어 빨리빨리 해야 하는데 계획형 J인 내 성격이 한껏 예민해진다.
'지금 놀 시간이 어디 있어! 화장실에서 물 가지고 놀면 위험해? 위험 안 해? 이제 다들 잘 시간인데 시끄럽게 하면 돼? 안돼? 특히나 화장실은 다른 집으로 소리 잘 들리는데, 지금 잘 시간에 이렇게 시끄럽게 하면 돼?'
머릿속에 폭풍 잔소리를 한가득 쌓아두고 화장실 문을 열어제낀다. 매번 같은 잔소리. 매번 같은 뻔한 상황. 매번 같이 반복되는 훈육.(훈육이라고 쓰고 예민한 성질부리기라고 읽힌다.)
그런데 문을 열고 마주한 모습이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항상 양치컵에 물을 담아 뿌리며 놀고 있던 녀석들. 오늘은 혀기 손에 평소와는 다른 게 들려있었다.
화장실 청소용 솔.
순간 머릿속에 전기가 '파직!' 하는 기분이 든다.
"그걸로 뭐 했어?"
대충 솔로 효니 팔(맨몸)을 쓸어내리며 장난치고 있다고 했다.
"너 그게 대체...! 하아- 이게 뭐 하는 건데 이걸...! 하아-- 진짜. 하아-"
'저 지저분한 걸 왜 몸에다 장난치는 거야? 솔로 쓸어내리면 아프기도 할 텐데 뭐가 좋다고 둘 다 웃고들 있는 거야. 이 늦은 시간에!'
터져 나오는 화와 가라앉히려는 마음이 소용돌이치며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은 있는데 마냥 화를 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입을 틀어막는다.
침착하게 머릿속을 정리해 보자.
그래도 변기솔이 아니라 바닥솔인 건 다행이잖아. 사실 다행인 건지 모르겠다만 그렇게라도 생각해야지. 흥분을 가라앉히자. 나는 무조건 화를 내고 무섭게 하는 아빠가 아니다. 문제점을 바로잡고 아이들에게 해야 할 것과 해선 안 되는 것을 잘 가르쳐 줄 수 있는 참된 아버지이다.
"대체 뭐 하는 짓이야!"
때려치우자. 차분한 훈육을 떠올렸지만 입에서는 사자후가 튀어나온다. 이상적인 아버지가 되기엔 내 멘털이 연두부 수준이다.
소리치기는 비장의 무기다. 사용하면 단박에 분위기를 제압할 수 있다. 하지만 비장의 무기란 자고로 최후의 최후에 사용하는 일격필살!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사실 무섭게 화내는 건 내 의지로 쓰는 필살기가 아니다. 나는 차분하게 정리하고 싶은데 나도 모르게 울컥 터져 나온다. 마치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터져 나온 방귀처럼 인지의 범위를 넘어선 감정의 폭발이다. 무섭게 소리치면 효과는 즉각적이지만 죄책감이 나에게도 돌아온다.
스스로의 감정을 갈무리하다 보면 내 표정, 내가 뿜고 있는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보여주고 싶지도 않고 보여줘서도 안될 모습이다.
풍기는 분위기에 효니의 코가 벌릉벌릉 거린다. 혀기의 입꼬리는 아래로 들썩거린다. 표정만 보면 금방 울 것 같다. 무섭고 속상한 마음에 금세 울어도 될 것인데, 꾸역꾸역 참는 모습에 금세 맘이 약해진다.
화난 아빠의 입장도 있으니 곧장 돌아설 수는 없다. 뭘 잘못했는지 정확히 설명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알려준다. 훈육이라는 게 참 힘들다.
그런데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오니 곧바로 웃는 소리가 난다. 날카로운 분위기가 풀리면서 둘이 머쓱하게 웃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게 내 발화점을 다시 한번 건드렸다.
다시 한번 벌컥 문을 열고는 한소리를 뱉는다.
방금까지 혼나고서는 웃음이 나오느냐. 잘못했으면 반성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봐야지, 금세 똑같이 장난치고 있느냐.
위한답시고 했던 말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것 같아 괘씸하기 짝이 없다. 또다시 연설을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허무감이 밀려온다. 늦었으니 더 시끄럽게 하지 말고 빨리 씻고 나오라고만 하고 나온다.
이런 상황, 이런 생각은 INFJ에게 최악이다. 침대에 걸터앉으니 자책감이 휘몰아친다.
꼭 그렇게 화를 냈어야 했는가. 더 부드럽게 할 수는 없었나? 이렇게 하는 게 맞나? 내가 잘못하고 있어서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닌가?
여기저기에서 주워들은 정보들도 상황에 따라 모두 옳지 않기에 더 흔들린다. 하지만 늪 같은 감정에 빠져 생각해 봤자 정확한 답이 나오진 않는다. 결국 내가 옳다고 믿는 기준을 흔들리지 않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부모의 기준이 억지스럽고 고집스럽기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나도 틀릴 수 있으니까.
어른의 기준이라는 게 모두 옳은 건 아니다. 어른이면 모두 정답인가? 어른이 돼도 범죄를 저지르고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때로는 어린아이들에게서 진리를 배울 수도 있다. 길거리에 떨어진 돌멩이를 보고도 배울 수 있는 법이지.
다시 한번 오늘의 내 행동을 복기한다. 정말 필요한 행동이었나? 이게 좋은 영향을 줬을까? 그럴 수도 있는 행동에 내가 너무 예민했던 건 아닌가?
극 N의 상상, 망상, 생각이 폭발한다.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부모라는 위치에 선 나를 위해 더 나은 길을 선택하기 위해 고민한다.
어렵다 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