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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Mar 27. 2023

나 혼자만 망한 이벤트

8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까지도 후회되는 한 가지가 있다.


때는 바야흐로 효니의 돌잔치 날. J의 성향을 품은 나는 결혼식 때도 그랬지만 돌잔치에도 많은 신경을 쏟았다. 장소를 알아보고, 사회를 알아보고, 손님들을 알아보고, 선물을 알아보고, 당연한 일들을 하는데에 필요 이상의 과한 신경을 쏟았다. 뭐 하나 결정하고 나서도  '혹시나 더 나은 건 없나?' 하는 생각에 다른 것을 알아보고 비교하고 했다. 성격상 처음 결정한 곳도 비교하고 비교해서 최선의 선택을 내린 건데, 혹시 나라는 그 마음이 쓸데없는 스트레스만 늘렸다. 뭐 어쩌겠는가. 스스로 피곤한 성격인 것을.


어찌어찌 진행이 잘 되어 돌잔치 당일이 됐다. 부족한 것도 없고 예약장소에 오신 분들이 다 앉을 만큼 잘 맞아떨어졌다. 첫 돌잔치지만 전문 사회자분이 계시기에 불안감은 없었다. 사회자분은 행사 전 미리 진행될 순서에 대해 설명해 주고, 중간에 발걸음 해주신 분들께 감사말 전하는 시간이 있으니 할 말 정도만 준비하면 된다고 알려줬다. 오케이. 시원찮은 글을 쓰더라도 글쟁이는 글쟁이. 기본 인사말정도 내뱉는 건 문제도 아니지!


여차저차 자리해 주신 분들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 시간이 됐다. 나는 아내분을 보필하며 무대 앞에 자리했다. 사회자분의 진행에 따라 효니가 등장하고 주인공을 향한 축하와 함께 행사가 진행됐다. 돌잔치에서 사실 부모가 할 일이 별로 없다. 직접 진행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주인공인 효니를 안아 들고 여기저기로 이동시켜 주는 기사역할을 할 뿐. 사실상 움직이는 관객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얼떨떨하게  행사를 따르다가 내가 주목받는 순간이 됐다. 이런 자리에서 긴장하는 I지만 INFJ의 I는 조금 다르다. 정말 싫지만 주목받은 상황이 돼버리면 폭주하는 츤데레가 바로 인프제다. 

대략 귀한 걸음에 감사드리며 지금의 축복을 받아 효니를 어찌어찌 잘 키우겠다는 식의 말을 했다.

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로 빙의해 위대한 개츠비가 된 것처럼 여유 있고 당당하게 인사말을 전했다.


분명 그런 줄 알았다.


할 말을 마치고 사회자와 아이컨텍이 오갔다.

1초. 2초. 3초.

짧지만 굉장한 공백이 느껴지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다.

따로 인사말을 적어서 준비하진 않았지만, 즉석에서 나온 것 치고는 굉장히 능숙해 보였을 거라 믿었다. 내가 날 너무 과대평가한 걸까?


"혹시 더 하시고 싶은 이야기는 없으신가요?"


사회자의 물음에 '아차!'싶었다. 그와 동시에 뭔가 번뜩였다.


"아, 그리고 효니를 낳아주고 길러주고 힘들어도 항상 참고 고생해 주는 아내분께도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완벽했다.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것. '주최자'라는 입장이다 보니 손님들께만 신경 쓰느라 정작 아내분을 빼놓을 뻔했다. 여자들은 이런 것 하나가 두고두고 쌓인다고 하지.

나의 미스테이크를 콕 집어낸 사회자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다. 역시 전문가다. 이런 행사를 몇 번이나 해봤겠는가. 노하우라는 것에 감탄을 하며 사회자에게 미소를 보냈다.


근데 이상하다. 표정이... 뭔가 닦달하는 듯한 표정이 사회자 얼굴에 박혀있다.


"아, 또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응? 다 했는데?


"네."

"정말로 더 하실 말씀 없으신 거죠?"

"네!"


이미 다 했는데 뭘 자꾸 하란다. 마지막 티키타카가 조금 뻘쭘했지만 이후에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끝났다. 식사들도 마치시고, 돌아가시는 길에 답례품도 챙겨 가시고. 

하아- 며칠 동안 쌓여있던 갑갑함이 해소되는 순간.

그렇게 효니의 돌잔치는 끝났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

그 순간은 아주 뜬금없이 찾아왔다. 극 N의 잡생각이 폭발하던 어느 날, 아무런 전초도 없이 돌잔치에 대해 떠올리다가 사회자와의 일이 생각났다. 거참. 할 말도 없고만 뭘 그렇게 말하라고 닦달하는지...

그런데 있더라. '할 말'이 아니라 '해야 할 말'이 있더라. 

효니를 낳으신 아내분께 고맙다고 하고선, 그런 우리를 낳아주신 양가 부모님께 고마움에 대한 말을 잊은 거다. 그재서야 사회자의 시선이 내게 하려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야. 그거 있잖아. 그거! 너 그거 말해야 해! 빨리 생각해!"]


그걸 깨달은 순간 청천벽력이라는 말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지금에서야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오직 나만 빼고서... 솔직히 그때부족했다고 해도 이제 와서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럼에도 그때의 후회가 몇 년의 시간을 지나 해일처럼 밀려온다.


한 번 하고 넘어가는 이벤트. 내가 주인공도 아니고, 내 멘트 하나하나 귀 기울여 메모해 가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 앞에서 제 구실을 못해낸 것 같아 속이 애리다. 

단순히 부족해 보일까 봐 창피한 게 아니라, 아들, 사위 노릇을 못한 것이 한이다.


성격 탓인 걸까? 아무도 탓하거나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데 혼자 속앓이다.

이걸 읽는 당신에게 전한다. 어떤 성격이든, 어떤 상황이든, 흠을 만들지 말아라. 티끌이라도 마음에 짐을 얹지 않고 편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극 N의 쓸데없는 걱정... 나도 답답하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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