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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Mar 24. 2023

사악한 위안.

출근길 지하철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다들 비슷한 표정. 피곤에 물들어 감정 없는 얼굴들. 나 또한 다르지 않을게 분명한 얼굴.

낮이나 퇴근시간이 되면 사람들 얼굴이 조금 펴진다. 들판에 꽃이 한 송이씩 피어나듯,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들 사이로 활기 넘치는 얼굴들이 하나씩 자리한다.

번화가를 가로지를 때면 사람들 얼굴에 행복감이 스며든다. 에너지가 넘치고 친구와 연인들을 마주하는 얼굴엔 웃음이 새겨져 있다.


행복해 보인다. 다들 즐거워 보인다. 

오직 나만이 깊은 수렁 속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을 생생하게 느낀다.

가면을 쓰고 평범한 척 괜찮은 척하는 나라는 존재가 몹시 이질적이다.

TV 뉴스에 나올법하게 큰 사고를 겪거나 파산을 하진 않았지만, 내 나름대로 죽을 만큼 힘든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인다. 행복까진 아니라도 아무렇지 않은 정도는 돼 보인다. 


왜 나만? 왜 나한테만?

이런 생각으로 점점 어둠의 끝자락에 몸을 숨기다가 알게 됐다. 나만 힘든 게 아니란 걸. 나만 그런 게 아니란 걸.


항상 밝고 끊이지 않는 텐션을 보여주던 지인도 내가 미처 몰랐던 고민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것도 꽤나 오래전부터. 그 순간 내 어둠에 작은 물결이 일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이렇게 밝은 사람조차 속에는 검은 불씨를 안고 살아가는구나 하고.

조금은 힘이 난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행복한 타인들이 사실은 나랑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내가 유별나지 않다는 사실이. 타인의 불행이 내 행복이 되는 건 좀 아이러니지만 그래도 미안보다는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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