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미스터리한 일이지만 효니는 인기가 많다. 적당히도 아니고 상상이상의 인기절정이다.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 매일 보는 아빠 입장에서는 미스테리한 부분이다. INFJ와 ISFJ 사이에서 어쩌다 이런 결과물이 나온건지.
효니를 좋아하는 한 남자애는 자기 가방에 효니 전용 필통을 넣어 다니기까지 한다. 만약에 효니가 연필이나 지우개가 필요하면 효니 전용 필통에서 꺼내 빌려주기 위해 챙겨 다닌다고 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꼭 남자애들만 그러는 게 아니다. 남녀불문, 학교나 태권도나 어딜 가도 항상 모든 아이들의 중심에 효니가 있다. 애들끼리 노느라 엄마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효니는 인기다. 어른들한테 예의도 잘 차리고 어찌나 여우 같은지 요망하기 짝이 없다.
효니 친구 엄마 한 분은 성인 태권도를 다니시면서 힘들 때마다 효니를 떠올리며 힘을 내신단다.(효니는 언제 어디서든 태권도를 하고 있다. 똥 싸러 변기에 앉아서도...) 효니 친구도 같이 태권도를 하는데 자기 자식을 버리고 왜 효니를 떠올리시는지...
이렇게 장안의 화제인 효니가 처음 2학년이 되어서는 좌절을 맛봤다.
처음 며칠간 학교에 가기 싫다는 표현을 했다. 1학년 때부터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서 찡얼거렸기에 별 영향이 없었다. 코로나로 일정이 꼬여서 겨울방학을 2달 동안 했으니 일찍 일어나는 게 싫을 만도 하지.
다음날도 마찬가지. 이번엔 공부가 어려워서 싫단다. 이제 막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돼서 특별한 공부도 안 할 텐데 이래저래 싫은 소리 투성이다.
그렇게 한이틀이 지나자 학교 가기 싫다고 눈물까지 보였다. TV에 나오는 금쪽이처럼 난리를 피우진 않았지만 이렇게나 가기 싫은 표현을 한 적이 없기에 마음이 좀 동요했다. 그런데 어쩌겠어. 그래도 가야지. 나도 일하기 싫은데, 해야 하니까 하잖아. 결국 별다른 위로도 못해주며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끌고 나왔다.
그리고 다음날, 또 그다음 날까지 등교시간마다 작은 눈물을 흘렸다. 물어보면 괴롭히는 친구도 없고, 선생님도 안 무섭고 다 좋다는데 뭐가 이리 불만일까?
며칠을 추궁하고 나서야 그 속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자기만 친구가 없단다. 다른 친구들은 저마다 모여 노는데 자기만 친구가 없단다. 왕따는 아닌데 자기랑 놀아주는 친구가 없단다. 먼저 놀자고 해봤냐 물으니 아니란다. 학교에서 의기소침하게 혼자 있는 모양이다.
학년이 오르면 전년도에 같은 반 친구가 한둘쯤 같이 올라가기 마련인데 효니는 혼자서 올라왔다. 그러다 보니 학년초에 놀 친구가 없는 모양이다. 부모 맘이 쓰리다. 더더욱이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사람들을 몰고 다니던 녀석이었기에 상실감이 더 크지 싶다.
다음날도 효니는 세상 망한 표정으로 내 손을 잡고 나왔다. 나는 효니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행동지침을 내렸다.
'친구가 안 놀아주면 먼저 다가가서 같이 놀자고 해봐라. 친구들도 서로 모르기 때문에 1학년때 같은 반 친구들과 모여있다 보니까 효니가 보기에는 서로서로 친해 보이는 거다. 걔네도 서로 친해서가 아니라 다들 어색해서 그런 거니까 먼저 말해라.'
표정을 보니 와닿지 않는 모양이다. 영혼 없는 대답만 무미건조하게 돌아온다. 혼자 걷는 모습도 나한테 우울함을 어필하려 터벅터벅 걷는다. 이 능구랭이 녀석. 쓰린 맘으로 나도 출근을 한다.
그날 저녁. 퇴근 후 마주한 효니는 어째선지 싱글벙글 텐션이 높다. 그러고는 오늘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서 삼총사를 하기로 했단다.
"오늘 학교 가길 너무 잘한 것 같아! 아 내가 왜 바보처럼 울고 가기 싫다고 했지? 부끄럽게 정말."
어이없다 증말. 괘씸해서 어이가 없다. 천천히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뭐 당장에 삼총사까지 만들어 오셨담. 내 예상을 아득히 넘는 인싸다. 도대체 뭘 물려받고 저렇게 된 건지, 나를 돌아보고 아내분을 살핀다. 아무리 플러스를 해봐도 저만큼의 존재가 탄생하는 건 미스터리다.
한 달쯤이 지나고 담임 선생님과 전화상담의 시간이 됐다. 효니에 대해서는 사실 궁금한 게 없다. 당연히 공부도 잘할 거고. 당연히 친구들과도 잘 지낼 거고.
그래도 일전의 상황들이 늘 마음에 박혀있었다. 굳이 물어본다면 친구들과는 어떻게 지내는지 묻는다. 그래도 상황이라는 게 직접 눈으로 본 게 아니니까 말이야.
"효니 교우관계가 어떤지 알고 싶어요. 초반에는 친구들이 안 놀아준다고 속상해하면서 학교 가기 싫다고 그러고 울고 그랬거든요."
"네?! 다현이가요? 다현이가 늘 애들 몰고 다녀요. 쉬는 시간만 되면 친구들이랑 젠가도 하고, 항상 친구들이랑 있어서 그런 생각하는 줄 전혀 몰랐어요."
어이가 없다. 괜히 효니한테 배신감이 든다.
나도 당연히 효니라면 교우관계만큼은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조금의 걱정이라면, 친구들한테 인기가 많다 보니 다른 친구가 질투해서 해코지하진 않을까 하는 정도?
"효니는 친구들이랑 잘 놀아요. 반에 혼자 있는 친구가 있는데 얘는 제가 봐도 '아... 진짜 재미없겠다.'싶을 정도고, 효니는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그래. 신경 끄자. 알아서 잘하는 딸내미 둬서 호강하네.
그날 내가 해준 조언이 도움이 되었을까? 어차피 냅둬도 친해졌을 건데 괜히 내가 다 한 것처럼 공적을 가로채도 되나? 또 극 N의 잡생각이 발동된다.
아무렴 좋다. 효니가 스스로 잘 하든 못하든, 잘하면 잘한다고 칭찬해 주고, 못하면 곁에서 도와주는 게 아빠의 역할이니까. 서로가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함이 작게 싹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