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의 나는 제법 공부를 못했다. 물론 지금도 다르지 않다. 안 했다고 해야 하나, 못했다고 해야 하나. 생각해 보면 머릿속에 입력되는 시간이 남들보다 더 필요했던 것 같다. 결국 같은 시간에 달성률이 차이나니까 공부에 의욕이 떨어졌다.
...라는 변명을 해본다.
확실히 외우는 게 어렵다. 암기과목 최악. 수학은 제법 하는 편이었다.(손을 놓기 전까지는...) 공식 몇 개만 외우면 나머지는 숫자만 바꿔주면 되니 이 얼마나 간단한가. 추리사고력이 나쁘지 않기에 응용은 내게 긍정적인 문제였다.
반대로 순전히 암기로 때려 박는 사회과목이나 영어, 한문은 나랑 상극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속담을 몸소 실천하며 하나 외우면 하나 까먹는 경이로운 실력을 타고났다.
당연히 공부에서 재미를 찾지 못하고 학을 뗀 지 오래다.
그런데 이 나이라는 게 신기하다. 학생땐 매 맞아 가며 해도 싫었는데, 이젠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도 종종 공부를 하고 싶은 때가 있다. 심지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막상 시작하면 '이래서 내가 공부를 접었었구나.' 하는 자아성찰을 하게 되지만.
오래전 TV에서 세뇌하다시피 나오던 광고 때문일까? 영어가 안 돼서 시원스쿨을 배웠다.
몇 년을 교과서 붙잡고 해도 남는 건 아침, 점심, 저녁 인사뿐이었는데, 기본적인 문장 구조를 알게 됐다. 언제 be동사를 쓰는 건지, 언제 do동사를 쓰는 건지. 그걸 이제서야 알았다는 게 스스로도 소름이지만, 한 번도 이해하려는 생각으로 듣지 않았기에 이런 기본조차 까마득한 무엇이었다.
헌데 그 의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초반에 넘쳤던 의욕은 야금야금 뜯겨 먹혀 빼먹다 보니 어느 틈에 수강일이 끝나버렸다. '주어 + 동사 + 목적어'라는 가장 기초되는 구성을 이해한 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었지만... 이것만으로는 그냥 돈 날렸다고 보는 게 맞다.
그리고 몇 년 뒤, 또다시 영어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야! 나두 할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이 정신을 지배하며 야나두를 결제했다. 10분 강의라는 콘셉트가 마음에 들었다. 어쨌건 시원스쿨을 실패한 경험이 있으니 '간단하게 접근하면 이번엔 잘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영상은 이 전에 배웠던 수준의 진도를 반복했다. 강의 스타일도, 시간도 달랐지만 기초 시작은 결국 문장 구성에 대한 설명. 그래도 한 번 해봤다고 제법 이해하기 쉬웠다. 하지만 이번에도 비슷한 시기쯤에서 그만두게 됐다.
개인적인 스케줄 때문이었는지, 학습에 대한 부분이었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그 즈음에서 또 게을러졌던 건 분명하다.
시험을 치를 나이는 아니지만, 외국인 친구도 만들고 여행도 가보고 하는 로망이 있는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짬나는 시간에 깨작깨작 하는 것 만으로는 내 흥미도, 재능도 키우긴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로망은 이룰 수 없기에 로망인 걸까?
누군가 하루에 5 단어씩만 외우면 1년에 1,825 단어를 외운다고 했다.
말이 되나? 오늘 5 단어 외우고. 내일이 되면 전날 꺼 까먹고 당일 꺼 5 단어 외우고. 그런 식으로 반복하면 1년 후에도 그날 외운 5 단어 밖에 모를 텐데... 사기광고인가?
이런 깡통 같은 머리로도 계속 영어에 대한 로망이 꽃을 피운다. 어제저녁 예전에 지웠던 영어단어 어플 3개를 설치했다. 그렇다. 또 영어병이 도졌다. 게으름으로 며칠이나 가겠냐만은, 이런 깨작거리는 관심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채워지는 무엇이 있다.
하아... 머릿속이 차야하는데, 괜히 설레발만 차올라서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