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은 변하는 걸까? 아니면 감춰졌던 것이 상황에 따라 드러나는 걸까?
육아를 하면서 성격이 많이 변했다. 한껏 예민해지고 화가 늘었다. 참을성도 줄고 말투도 날카로워졌다.
나는 인프제(INFJ)다. '선의의 옹호자'라는 칭호에 걸맞게 사람과 상황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기류를 잘 읽는다. 미세한 표정변화를 보고 상대방이 좋아하는 쪽으로 흐름을 보낸다. 자리가 왠지 불편해질 것 같으면 분위기를 환기시키거나 피한다. 그래서 화낼 일이 없다.
그래도 사람사이에 불만이 전혀 안 생길 순 없다. 그런 건 내가 참는 걸로 해결이다. 나 하나만 참고 넘어가면 모두가 평화로울 수 있잖아. 조금 분해도 심호흡 한 번으로 털고 넘어가면 평화가 따라온다.
물론 너무 심하면 손절이다. 내가 역사에 남을 성인군자도 아닌데 무조건 적으로 쓰레기통이 될 필요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평화만 끌어모으는 게 내 방식이다.
그런데 육아는 이런 방식과 상극이다.
아무리 성향을 파악하고 대처해도, 그걸 넘어선 고집과 말썽이 날아온다.
어른들은 말하면 듣는데, 애들은 이해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앉으라고 하면 뛰고 눕고 난리다. 억지로 손으로 붙잡아 앉혀도 슬슬 눈치를 보고 날뛰기 시작한다. 숨이 막혀온다.
그런데 피할 수가 없다. 손절도 못한다. 화가 나면 격리라도 돼야 하는데 그럴 수도 없다. 내가 직접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니까. 알레르기 있는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 같다.
결국 목소리가 높아진다. 목소리가 커지고 톤이 날카로워진다. 찌푸려진 표정, 강압적인 말투, 매섭고 따가운 분위기는, 욕이나 나쁜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시퍼렇게 날이 서있다.
스스로 이 모습이 너무 싫다. 처음에는 속으로 애들 탓을 했다.
'말을 안 들으니까 이렇게 화를 내지!',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애들이 날 이렇게 만들었어!', '말만 잘 들으면 이렇게 화낼 일도 없잖아.'
모든 게 애들 탓.
근데 이것도 반복되다 보니 결국 내 탓을 하게 된다.
'내가 한번 더 참을 걸...', '애들은 월래 말 안 들으니 애인 건데, 내가 너무 신경질 적인 건가?'
자괴감이 몰아친다. 한숨이 끊이지 않고 나온다. 가벼운 두통에 머릿속이 묵직하게 어지럽다. 갑갑한 마음은 애들한테 미안하단 생각으로 가득 찬다.
'그래. 이제 달라지자! 화내지 말고 너그럽게 대하자!'
이 생각을 하는 와중에 거실에 서 두다다다-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뛰지 말라고 했지!!!!!!"
언제 다짐했냐 싶게 사자후가 터져 나온다. 소리친 내가 더 놀란다. 머리로 인식하기 전에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화.
다짐을 한 후도 아니고, 다짐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못 버티고 화를 내버리니 미쳐버릴 것 같다. 한두 번이 아니다. 몰아치는 자책감 속에서 날 이렇게 변화시킨 애들이 원망스럽다.
근데 애들 탓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기 전에 늘 피하고 정리하다 보니 경험이 적어서 잘 몰랐던 거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과거에도 이렇게 히스테릭한 시절이 있었다.
군대에 있을 때, 나름의 짬밥을 먹고 분대장이 됐다. 소대의 최고참. 중대에서도 더 이상 선임은 없었다.
나는 고정관념 속 군대가 싫었다. 계급체계의 구조상 어쩔 수 없는 경계는 있지만, 그걸 무기 삼아 타인을 공격하는 건 성격상 못 참았다. 인간적인 수준의 기본만 지킨다면 어떤 장난도 오케이였다.
최소 1년 이상 함께 생활한 후임들은 같은 반 친구처럼 편하게 다가왔다.(물론 계급은 지키며, 편하게 지냈단 의미다.)
이렇게 몽글몽글했던 내가 화를 내는 순간은 딱 하나였다.
[해야 할 기본을 안 할 때.]
구보를 하거나, 어딘가 대열을 맞춰 이동할 때 군가를 부르는 경우가 있다. 이때 대충 웅얼거리거나 제대로 안 하면 사자후가 튀어나왔다. 내 명령을 안 들어서가 아니라, 당연한 걸 안 해서.
'이것들이 군가는 큰소리로 딱 맞춰하는 건데, 이게 뭐 하는 짓이야?'
FM정신이 빛난다. 기본을 지키지 않는 것을 바로잡기 위한 행동. 얼차려를 시키진 않았지만 폭발하는 큰소리로 소대원들을 주목시키고 잘못되었음을 경고했다.
나는 직위에 맞춰 올바른 일을 했다.
그리고 모두들 납득할 행동이라 생각했다.
시간은 더 지나 전역할 때가 됐다. 나는 쑥스러워서 생일도 안 챙기는 사람이지만, 동료들은 달랐다. 소대원들이 쓴 편지를 모아 앨범을 만들어줬다.
부대를 나서 집에 오는 길 앨범을 펼쳤다. 사내놈들이 얼마나 멋지게 썼겠는가. 회포를 풀듯 시원섭섭한 인사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딱 하나. 나를 욕하는 편지가 있었다.
['너도 네가 알 거다.']
처음엔 잘못 봤나 싶었고, 다음엔 장난인가 싶었고, 그다음엔 대체 뭐 때문인가 싶었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후임들이 편하도록 노력했는데.
가해자는 원래 기억 못 한다고 하지만 이건 그 수준이 아니다. 신병이 와도 기대서 쉬라고 했던 난데.(눞는 것까지는 다른 병사들도 있으니 마지노선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구보 중에 소리친 것 외엔 생각나는 게 없었다.
누군가는 내 히스테릭한 모습에 '잘하고 있는데 왜 X랄이지?'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편지에 악플을 남긴 그 병사가 이상한 거라 생각했다.
애들한테 화를 내고 자책하고... 그럴 때면 군시절 모습이 떠오른다.
결국 똑같다. 나보다 낮은 위치의 사람들 앞에서 날카로운 감정을 참지 못하는 거.
상황과 상대방이 날 나쁘게 만든다고 믿었다. 원래 나는 이렇지 않다고.
혼자 고상한 척은 다 했지만, 실은 내 안에 있던 내 성격이다.
숨겨진 내 성격을 알게 되니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전에는 아이들이 클 때까지는 답이 없다며 원망했는데, 지금은 온전히 내 탓임을 인정하고 스스로 마인드컨트롤을 한다.
물론 해결되진 않는다. 여전히 발화점이 낮아 툭하면 버럭 한다. 말투에 부드러움은 산화되어 녹슨 것처럼 공격적이다.
'나만 변하면 돼.'
나를 알 게 되고 주변에 더 마음 쓸 여유가 생겼다. 물론 행동으로 변화된 건 없다. 무의식 중에 욱하고 튀어나오는 건 내뱉고난 후에야 나도 인식할 수 있다.
그래도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게 막연한 것보다 후련 하다다. 남을 미워하는 마음은 깊게 박히지 않는다. 순간의 감정에 따라 흔들릴 뿐. 이전보다 훨씬 회복이 빠르다.
나를 살폈다. 그리고 인정했다.
처음엔 이해가 안 됐지만 그냥 받아들였다. 마주하기 힘든 모습도 결국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