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 가면 두 자리에 두 자리를 더해 네 자리가 필요하다. 둘만 있던 우리 사이에 쬐끄만한 두 녀석 때문에 자리가 좁은 음식점은 엄두를 못 낸다.
세 개를 시켜 하나, 하나, 반, 반을 먹었던 것도, 이제는 하나, 하나, 하나, 하나.
가족 모두가 먹는 양이 적다. 남들보다 긴 시간을 3인분으로 먹다 보니, 4인분 시키는 게 적응이 안 된다. 다 먹을 때도 있지만 애매하게 남을 때에는 괜히 아까운 마음이 든다. 그냥 세 개만 시킬걸...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 여러 가지가 변했다. 더 이상 사랑하는 두 남녀의 영화 같은 공간이 아니게 된 에덴에는 선악과에 정복당해 오직 화내는 것뿐인 아담과 평화를 담당하는 이브, 그리고 그 둘에게 찾아온 두 마귀 같은 아기.
나는 예전부터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릴 땐 아이를 좋아했지만 언젠가부터 인간보다 동물을 좋아했다. 내가 딱 싫어하는 게 '해결 안 되는 징징거림'인데 애들이 딱 그렇다. 되는 것 안 되는 것 딱 인식하고 행동하는 어른과 달리, 안 되는 것에도 떼쓰고 찡찡대는 게 참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난 아기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하지만 운명의 첫 번째 아기가 우리 곁에 왔다. 그리고 두 번째도.
그래서 2인 이상의 것들은 생각도 준비도 하지 못하고 변화가 찾아왔다. 그 모든 변화가 낯설고 힘들었다. 다들 똑같이 그렇다고들 하던데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쟤도 힘들고 걔도 힘들다고 해서 내가 안 힘든 건 아니니까.
아이들을 키우면서 금방 화를 내게 되었다. 예민함은 더울 날이 갈려 뾰족해지고, 쌓아두던 참을성은 찰랑찰랑하게 언제 넘칠지 모를 판이다. 변한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도 들고, 그 변화가 또다시 스트레스가 되어 더 화를 내게 되고. 딜레마다.
다행인 건 시간이 흘러 늘어난 두 자리가 어색하지 않아 진 점이다. 네 자리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법을 배워갔다. 제법 그럴싸하게 아이들을 컨트롤하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화를 덜 내고 더 참게 된 건 아니다. 여전히 날카롭고, 여전히 자책한다.
극N+극J를 품은 나는 항상 두 아이에게 시선 고정이었다. 언제 사고를 칠지 모르기에 '보호자'라는 입장에 자리한 나는 늘 비상사태였다.
그런데 이제는 제법 아내분을 신경 쓸 수도 있게 됐다. 지친 나는 주변을 돌아볼 틈이 없었지만, 익숙해진 나는 고갤 들어 주변을 살필 수 있게 됐다.
혼자 모든 일을 짊어질 필요도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는 3명이 아니라 4명이니까. 나와 함께 할 사람이 곁에 있음을 뒤늦게 알아챘다.
나는 여전히 예민하게 자책하며 4명에 익숙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