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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Sep 21. 2023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나는 기다리는 게 싫다. 참을성 없는 게 아니라 비효율적이란 생각 때문이다. 사람을 기다리는 건 한 시간 넘게도 기다릴 수 있지만 놀이공원이나 음식점 앞에서 몇 시간 동안 서있는 건 타산이 안 맞다. 몸도 고되고 시간도 낭비하면서 즐기는 건 찰나의 순간. 아무리 생각해도 손해다.


그래도 전엔 친구들과 함께하는 기다림은 감당할만했다. 그런 곳에서 기다리는 건 당연한(?) 일이고, 줄 서서 떠드는 시간까지 즐거움에 포함시키면 대충 쌤쌤이다. 사실 친구들과 노는데 위치가 뭐 중요할까. 그냥 한강변 계단에 앉아서도 한참을 떠들 수도 있는데, 추가로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혜택까지! 물론 비싼 지출과 근육통이 동반되지만 다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하루를 쏟아부었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친구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결혼 후,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참을성은 회피해야 할 상황과 동의어가 됐다. 


아무리 강형욱 훈련사가 와도 "기다려!"를 교육시킬 수 없는 게 아이들이다.(오은영 선생님은 가능할까?) 조금만 시간이 지체돼도 칭얼거리며 신경을 긁는다. 기다림 자체로도 정신력이 소모되는데 아이들의 행동은 대미지를 배가시킨다. 그냥 포기하고 갈까 싶다가도 기다린 게 아까워서 끝까지 기다린다. 5분쯤 지나면 아까 참고 기다린 선택을 원망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일정을 계획할 때 기다릴 확률이 있는 곳은 후보에도 못 오른다. 놀이공원은 당연히 제외고(어차피 탑승도 못한다) 기간한정으로 진행하는 체험회나 갑자기 SNS에 급부상하는 인기 코스는 그야말로 그들만의 이야기다. 

적당히 갈 곳이라고는 키즈카페뿐인데 월급 메말라가는 속도를 감당하기 어렵다. 애들도 키카가 질리는 모양이지만 어쩌다 한 번씩 키카가 자는 말에 다른 의미로 심쿵한다.


- 늘 가던 곳 제외. 

- 바글바글해서 서있기만 해도 지치는 곳 제외.

이 두 가지만 필터링해도 남는 게 없다. 주말마다 행선지를 보고해야 하는 아빠의 입장으로써 몹시 곤란한 상황.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찾아낸 곳이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공부 잘하는 애들만 오는 곳이라는 생각 때문에 평생 접할 리 없을 줄 알았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계절 날씨 상관없이 쾌적하게 아이들과 함께하기 좋은 히든플레이스를 찾았다. 


관심을 갖고 보니 도서관은 생각보다 주변에 많았다. 지방 쪽은 어쩔 수 없이 도서관 이 적다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의 도시라면 생각보다 가까운데 하나씩 도서관이 있다.(검색해 보시길)

내가 사는 지역은 미술도서관, 과학도서관, 음악도서관, 어린이도서관 등등- 다양한 콘셉트의 도서관이 있어 골라가는 재미가 베스킨 못지않다. 각 도서관마다 콘셉트에 맞는 활동 프로그램이 있어서 애들은 책 보다 체험관에 온 것처럼 논다. 아무렴 어떤가. 어릴 적부터 도서관이라는 장소에 익숙해지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야 밀리의 서재를 구독하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상관없지만 애들은 질리기 마련이다. 전용 체험관이 아니라 도서관에 작은 코너 같은 느낌이라 놀생각으로 오면 할만한 게 적다. 결국 또 다른 곳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또 찾았다. 줄 서지 않아도 되고, 돈도 안 들고, 색다른 곳.


"나가자."

"어디?"

"걸으러."


바로 동네 골목 투어다. 

저녁식사 후 어둑한 밖을 나와서(시원함) 평소에 다니지 않는 골목을 들쑤시고 다닌다. 애들은 나가기 귀찮아하지만 일단 나오면 잘 걷는다. 여차하면 킥보드 탑승도 허락한다.(대신에 따라가는 내가 힘들어진다.) 


함께 걸을 땐 꼭 손을 잡고 걷는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나. 나중에 사춘기가 오면 같은 공기를 호흡하는 것도 질색할 텐데.


오늘 학교는 어땠니? 

태권도는 어땠니? 

너는 대체 왜 그러니? 

아빠가 뭐. 너네가 그러니까 그러지.

엄마는 뭐. 엄마는 아빠가 혼나니까 그러지.


대충 시시콜콜하지만 지금 꼭 필요한 '대화'라는 걸 한다.

집안에 있으면 한 공간에 있어도 대화하기가 어려워진다. 

뭐 치워라.

뭐 하지 마.

뭐 갖다 줘.

뭐 도와줘. 

각자의 할 일을 하다 보면 이야기는 하지만 대화는 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이 산책시간이 소중하다. 

서로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내가 사는 동네가 이렇게 생겼구나, 이런 곳도 있구나, 여긴 뭔데 이런 게 있지? 하는 걸 알게 된다. 이 또한 새로운 흥미와 대화주제가 되어 지루함을 날려버린다.


나는 주말은 항상 가족과 보낸다. 특별한 취미도 친구도(...) 없는 덕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가족과의 시간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려 한다. 무엇보다 영원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 지금만이라도 더 애틋하려 한다.


물론 화려하고 엄청나고 대단하고 굉장한 곳을 가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되겠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스며있는 행복은 더 오랜 시간 기억될 거라 생각한다. 

당연한 거라 느낄 만큼 익숙해졌다가, 어느 날 문득 '아. 나 행복했었구나.'라고 떠올려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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