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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Dec 13. 2023

눈물이 나는 이유는 마음이 따르기 때문이에요.

내 눈물 포인트는 조금 특이하다고 생각한다. 직접적인 슬픔보다는 사람의 속마음에 담고 꺼낼 수 없는 슬픔에 끌린다. 마음씀씀이라고 해야하나? 

이를테면 이런거다. 단순히 두 사람이 헤어진 이야기에는 T와 같이 동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비밀을 간직하고 어쩔수 없이 나쁜사람인 것처럼 연인을 떠난다.' 이런 남에게 말못할 마음을 혼자 감당하는 이야기엔 F의 감성이 휘몰아친다.


오래전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슬픔이 무겁게 매달렸다. 어린 시절 함께 생활하며 날 키워주신 할머니였는데 오랜 시간 찾아뵙지 못했다는 현실이 죄책감처럼 얹어졌다. 그럼에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의아할 만큼 표면적인 슬픔이 나오지 않았다. 분명 슬픈데... 이럴 때만큼이라도 고인을 위해 눈물을 흘려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억지로 짜내려 감정을 잡고 집중해도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이전, 이후로도 몇 년 간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었기에 난 이때부터 눈물이 사라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달 전 내 아이의 팔이 골절되 병원에 입원했다. 처음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지만 슬프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의젓하게 참고 밝은 모습에 절로 안심됐다. 그렇게 이틀을 함께 입원실에서 지냈다. 링거바늘을 꽂고 움직일 때 혹시나 아프지 않냐고 물을 때면 생색내듯 하나도 안 아프다 말했다. 팔은 부목으로 고정해서 어지간히 꺾이지 않는 이상 안 아픈 모양이었다. 가만히 앉아있기 지겨우면 함께 산책을 하고, 병원에 비치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어린이 전용 병동이었기에 여기저기에서 우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그 분위기 만으로도 어린 아들이 감당하기엔 충분히 무서운 환경이었을 거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환한 얼굴로 나와 대화했다. 한 번씩 맞는 주사에도 울먹임 한 번 없었다. 어른들도 바늘이 들어갈 때는 인상을 쓰기 마련인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뻔뻔한 그 얼굴이 어이없었다.  


"누나는 뭐 할까?"


그러다 문득 예고도 없이 그런 질문을 했다. 엄마는 뭐 하고 있을까? 누나는 뭐 할까?


"누나는 학교 갔겠지."


처음에는 그저 궁금증이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그렇게 한 번씩 비슷한 질문을 받다가 문득 '얘가 집에 가고 싶구나.'하고 알아챘다. 그제야 알아챈 거다.  이 아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아이라는 걸. 그저 어른스럽다고만 생각했다. 사고도, 고통도, 가족과 떨어져 입원실에 있는 상황도 어린아이가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텐데...


그게 내 눈물 포인트다.

그때부터 모든 상황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담담하게 주사를 맞을 때도. 혼자 화장실에 갈 수 있다며 링거봉을 끌고 가는 모습에도. 싱거운 병원밥을 맛있다고 하면서 먹을 때도. 별것도 아닌 것에 괜한 마음이 복받쳤다.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모습에 왠지 미안함이 들었다. 몇 년 동안 쌓아둔 눈물댐에 수문이 열린 것처럼 통제할 수 없었다. 


오후 회진시간이 되어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병실에 찾아왔다. 단순 골절이라 크게 걱정할 문제는 아닌 듯했다. 가벼운 질문을 마치고 씩씩하다는 말을 건넸다.


"팔은 안 아파? 불편하진 않고? 괜찮아?"

"네."

"다행이네~ 놀라긴 아빠가 더 놀랐나 보다."


담당선생님은 그런 말을 남기고 웃으며 병실을 나섰다. 내 겉껍데기를 홀랑 벗겨놓고서...


그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진짜 내 아이를, 우리 가족을 사랑하는구나.'

평소에 그렇게 말 안 듣는다고 부글부글 끓고 스트레스를 뿜어냈는데, 결국은 제 새끼인 모양이다. 대신 아플 수 없음에 속상하고,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에 무력하며, 그렇게 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겼다.


이래서 건강이 최고라고 하나보다. 내가 아프고 불편한 게 끝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들고 슬프지 않도록 내가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았다.


지금은 몇 달이 지나 깁스도 풀고 뼈도 잘 붙었다. 그 후로도 한동안은 모든 행동에 조심조심을 말했지만 이젠 그것도 잊을 만큼 신경 쓰지 않게 됐다. 

애들을 보면서는 다시 예전처럼 스트레스를 받고 대체 어디서 이런 녀석들이 나왔나 하고 있다.


대신 지금은 조금 더 정확하게 알게 됐다. 

이런 불평불만도 광심에서, 사랑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걸.

진심으로 싫다면 공격적으로 해결될 수도 있다. 좀 더 쉽게 무관심해지면 된다. 눈에 보이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는 것에 스트레스받을 리는 없으니까. 


그렇기에 내 마음을 선명하게 이해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깊이 있게 이해해 본다.

선명하게 사랑하고 있음을.

깊이 있게 사랑하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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