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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Oct 11. 2023

#2 남자는 필라테스 할 때 왜 더 비싸요?

<남자가 필라테스해도 되나요?>


인터넷에 검생해보니 생각보다 필라테스 센터가 많았다. 대체 이 많은 곳들이 어디에 그렇게 숨어있었던 건지, 분명 지나다닐 땐 눈에 띄지 않던 것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우선 동네에 센터를 비교하기로 했다. 지도를 보아하니 집에서 편하게 도보로 갈만한 곳은 세 군데. 

처음 찾아간 곳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아래층엔 복싱장이 있고 위층에선 필라테스를 진행하는 센터였다. 규모가 큰 것 같아 내심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내가 방문한 타이밍이 안 좋았을까? 센터 안엔 아무도 없었다. 카운터에 놓인 [부재 시 전화 주세요. xxx-xxxx-xxxx]라는 메모에 전화를 걸자 아래층에서 우다다다 소리를 내며 몸 좋은 아저씨(?)가 올라왔다. 가격과 진행에 대한 상담을 하다 보니 1:1 수업으로 진행되고 시간약속을 잡으면 그때 강사님이 와서 배울 수 있다고 했다. 뭐지? 순전히 내 예상이지만 지정강사는 없이 수강생이 생기면 파트강사를 섭외하는 형식인 것 같다. 괜히 전문성이 의심되므로 패스.


다른 한 곳은 여성전용 센터라고 적혀있어 시도조차 못하고 바로 다음 센터를 방문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곳이라 깨끗했다. 고급스러워 보인다고 해야 하나? 깔끔한 화이트톤에 금색 라인과 소품이 마음에 들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하지 않나.

이곳도 역시 1:1 수업. 지인과 함께한다면 2:1까지 가능하다고 했다. 센터를 보아하니 1:6 그룹수업도 있긴 하지만 여성회원만 가능하다고 했다. 

가격을 상담받고 돌아오며 고민을 했다. 수업은 원장님이 직접 해주신다고 하니 믿음직스럽긴 한데 가격이 마음에 걸렸다. 


그룹수업과 개인수업의 총금액은 동일하지만 그룹은 6명이서 금액을 나눠내는 수준의 가격차이가 났다. 1:1 수업이 좀 더 집중적으로 케어받을 수 있어 비싸지는 건 이해한다. 단순히 그 돈을 내라고 하면 상관없는데, 남들은 저렴하게 사는 걸 나만 비싸게 하는 게 싫었다. 저렴한 그룹수업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냥 선택의 기회만 없다는 게 아쉬웠다. 아니, 아쉽다기보단 아까웠다. 


범위를 넓혀봤다. 조금 귀찮지만 여전히 도보로 이동 가능한 곳에 추가로 2곳 있었다. 이 정도 거리면 센터까지 가는 것만으로도 웜업이 되겠지. 긍정회로를 돌리며 방문했다. 금액은 비슷하고 수업도 1:1(or 1:2) 수업이라는 사실은 동일했다. 추가로 조금 더 먼 곳, 회사 근처 쪽 센터들도 찾아봤지만 죄다 같은 소리들이다.


굳이 같은 조건에 더 멀리까지? 참 의미 없다.

난 대체 뭘 기대했던 걸까? 결국 남자가 필라테스를 배우기 위해선 어딜 가나 별 차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초의 필라테스는 1차 세계대전 당시 남성군인들의 재활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처음 고안한 것도 요제프 필라테스라는 남성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필라테스는 ‘여성의 운동’이라는 개념이 크게 박혀있었다. 무겁고 힘든 웨이트 운동보다는 여성들에게 부담 없이 적고, 센터 홍보물도 재활적인 부분보다 미용적인 부분을 내세우며 어필하고 있다. 


여러 센터를 알아보면서 대부분의 센터에 여성탈의실만 존재한다는 공통점도 발견했다. 물론 남자 탈의실이 있는 센터도 있겠지만 내가 찾아본 열댓 군데의 센터 중엔 한 곳도 없었다. 필라테스 남성회원은 여자탈의실에 불쑥 찾아온 불편한 존재같이 느껴졌다.


“모르겠어요. 남자는 무조건 1:1 수업만 가능하데서 그냥 안 할까 생각 중이에요.”


모임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한 사람이 말했다. 그는 약 3개월 전부터 필라테스를 하고 있는 남성으로 내가 필라테스를 떠올린 계기가 된 사람이었다. 


"저는 그룹 수업 중인데. 다른데 알아보세요."

"다른데도 같아요. 옆동네까지 알아봤는데 다 남자는 1:1이래요."

"음... 그럼 큰 동네 쪽으로 찾아보세요. 저도 여기 지방이라 번화가 쪽으로 다니는데 여기는 남자도 그룹 받아요. "


지방과 수도권은 차이가 있나 하는 의심이 남았지만, 조언을 받아들여 이전보다 좀 더 거리가 있는 곳까지 찾아봤다. 동네가 주거 중심이다 보니 센터가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곳들이었다.

어쩌면 메인 로데오 쪽 센터들은 다를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으며 전화를 돌렸다.


“거기 혹시 남자 회원도 수강할 수 있나요?”

“네 가능합니다~”

“혹시 그룹수업도 되나요?”

“네 물론이죠!”

“네? 남자도요?”

“네에~”

“6인 그룹에 남자 회원도 동반 수강 된다는 말씀이시죠?”

“네. 맞습니다~”


예상 못한 긍정적인 답변에 어벙벙했다. 진짠가? 사기 아닌가? 뭐지? 보이스 피싱인가? 손쉽게 해결고 나니 좋은 일을 좋아라 하기 어색했다.


나는 이때 필라테스 센터도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프랜차이즈는 공통의 이미지가 중요해서일까?(내 추측) 개인 센터들은 다른 여성회원들이 불편해한다는 말로 그룹수업은 거부당했는데, 프랜차이즈 센터는 그저 한 명의 개인 회원으로 상대해 줬다.(모든 프랜차이즈형 센터가 동일한지는 모르겠다.) 역차별 없는 시선에 감동했고, 수강비 절약에 한번 더 감동했다. 


집에서는 지하철 2 정거장 정도의 거리가 있지만 집 앞에서 버스 타고 한 번에 가니 부담스러운 동선은 아니라고 생각됐다. 그 정도 번거로움은 1/6 가격으로 퉁치고도 남았다. 


그리고 곧바로 1회 체험수업을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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