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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Oct 06. 2023

#1 남자인 내가 필라테스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남자가 필라테스해도 되나요?>

눈을 뜨자 불쾌한 뻐근함이 목부터 어깨를 관통했다. 담이다.

이 지독한 놈의 담은 일주일이 넘도록 지속됐다. 보통 이틀정도 고생하다가 점점 나아지기 마련인데 당장 오늘 아침에 걸린 것처럼 최대치의 통증으로 한 주를 넘겼다. 이럴 수가 있나? 완전히 나아질 때까지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예측이 안 됐다.


아내분께서는 내게 병원에 가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매일 아침 겔겔거리는 모습이 지겨운 모양이다.

나는 어지간히 죽을 병 아니면 병원을 안간다.  감기에 걸리면 약 먹고 1주일, 안 먹어도 1주일이면 낫는데 그럼 갈 필요가 없지 않나? 무릎이 시려도, 잇몸이 부어도 마찬가지다. 뼈가 부러지지 않는 이상 '어차피 다 낫는다'라는 생각이다.

그런 나를 병원에 보낸 게 담이다. 이 정도 고생을 하다 보니 통증을 떠나 생활이 불편해서 방치할 수 없었다.


정형외과에 방문해 X-ray를 찍었다. 정형외과를 방문한 게 처음이라 ‘뭐 이렇게까지 호들갑인가’ 싶었는데 일반적인 순서인 듯했다. 그때 처음 봤다. 내 목뼈. 지금 당장 등껍질만 얹으면 곧바로 거북이가 될 듯 생독감 넘치는 거북목.

그 순간 정말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담이야 내버려두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알아서 나을 테지만 틀어진 자세는 평생의 고통을 보장하는 확인도장 같았다. 아무리 오래 앉아있는 학생이나 회사원들에게 흔한 증상이라고 하지만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니 적잖은 충격이었다. 거울을 보고 당연히 알고 있던 사실인데 확실한 증거물을 눈앞에 들이대니 '이정도면 보통일거야'라는 일말의 가능성조차 사라진 기분이었다.


담 증상 호전을 위해 어깨에 주사를 놓고(이리저리 쑤시며 10방은 맞은 듯하다) 물리치료를 받았다. 제법 큰 병원이라서 그런지 물리치료 구역이 따로 있었다.(병원이 낯선 내게 이런 시설들은 '큰병원'이라고 인식된다.) 한쪽에 모여 대기 중이던 물리치료사 중 한 명이 다가와 목을 풀어주며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여기 근육이 뭉쳤네, 평소에 여기를 눌러줘야 하네, 이러니 담이 오네, 저러니 불편하네. 이런저런 대화를 했지만 내 정신은 뭉친 근육보다 보기 싫게 휘어진 X-ray에 관심이 높았다.


”여기 물리치료사 중에 도수치료 잘하시는 분이 계신데, 거북목 같은 경우도 도수치료로 많이 좋아져요. 어차피 도수치료는 보험처리도 되니까 관심 있으시면 생각해 보세요. “


계속되는 내 질문에 치료사가 몹시 매혹적인 제한을 했다. 편하게 누워만 있어도 저절로 좋아진다니! 심지어 보험처리로 비용도 저렴!(?) 무엇보다 자기가 해준다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소개해준다는 데에서 신뢰감이 급상승했다.(짜고 치는 상술일지도 모른다는 못된 심보가 차오른 것에는 조금 반성한다.)


그날밤 내 머릿속엔 거북목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이걸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도수치료? 몹시 혹한다. 아프게 꾹꾹 누르는 마사지를 좋아하는 내게 도수치료는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도가 높은 선택지였다. 하지만 한 가지 의심이 선택을 막았다. ‘치료 횟수를 다 채운 후에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을까?’. 헬스장에서 힘들게 한 운동도 2주만 쉬면 원래대로 돌아가는데 남의 손으로 주물러진 육체가 과연 평생 갈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No라는 결론만 나왔다.

아무리 실비보험으로 금액이 낮아졌다지만 그게 10회, 20회씩 쌓이다 보면 만만한 금액이 아니었다. 그 지출이 유지되는 동안만 건강이 보장될 거라는 내 계산은 절대적으로 불합리한 거래내용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뭐가 있을까?

체크 사항

1, 내 상태가 개선될 것인가?

2, 효과가 지속될 수 있는가?

3, 금액적으로 부담되지 않는가?


이런저런 고민 중 내가 내건 조건에 부합하는 게 하나 있었다.


바로 ‘필라테스’.


애초에 재활치료를 목적으로 고안된 운동으로써 틀어진 신체 밸런스를 바로잡아줄 거란 기대가 컸다. 이것도 하다 말면 다시 효과를 잃겠지만 동작만 기억하고 있으면 언제든 혼자서 할 수도 있을 거라 판단했다. 조금의 노력만 있으면 평생의 건강을 보장받는 거란 희망회로가 힘차게 돌아갔다. 금액은 조금 많은가 싶었는데 도수치료 회차를 합산한 금액과 비교해 보면 큰 차이는 안 났다. 비슷한 가격에 효과는 평생이라고 생각하니 가성비가 좋았다. 헬스장에도 어지간한 pt 몇 회 차를 끊으면 100만 원 안팎으로 값이 훌쩍 뛰는데 그보다는 저렴하다는 계산이 작은 위안이 됐다.


필라테스에 마음이 넘어가 무조건 좋은 쪽으로 색안경을 낀 걸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대책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난 환영받지 못할 고통을 계기로 필라테스 센터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 다음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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