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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Oct 12. 2023

#3 남자는 필라테스 할 때 뭐 입어야 돼요?

<남자가 필라테스해도 되나요?>

나는 무슨 일을 할 때 그에 맞는 준비가 필요하다. 장비빨로 도배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녹아들 정도의 치장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서너 번 사용한 등산화, 등산복이 오랜 시간 봉인되어 있지만, 그걸 보고서 뉘우칠 만큼 내 소유욕은 가볍지 않다. 


필라테스 센터에서는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1회 체험권을 제공해 줬다. 아직 정식으로 수강등록을 한 것도 아닌데 며칠 동안 인터넷으로 남성용 필라테스복을 찾았다.


 유튜브를 통해 남자 회원원은 어떤 스타일의 옷을 입는지 알아봤다. 그런데 정보가 없다. 

대부분의 영상 속  남성회원에 관한 내용은 여성 강사들이 나와 남자회원을 케어하면서 겪고 느낀 경험담 식의 영상뿐이었다. 실질적으로 남자회원들에게 건네는 영상이 아니라, 다른 강사에게 '남자회원도 제법 가르칠만하다'하는 선배의 조언 같은 느낌이었다. 남자회원에 관한 내용은 스치든 언급될 뿐 정확한 타깃으로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 와중에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정보를 악착같이 모은 결과는 이거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1. 자세를 중점으로 봐야 하는 필라테스 특성상 너무 펑퍼짐 한 옷만 아니면 된다.

2. 하지만 남자 회원이 너무 타이트하게 입으면 부담스럽다.

3. 그러니 몸에 붙지 않는 옷이 좋겠다.

4. 그런데 몸에 붙는 옷이 좋다.

5. 그런데 부담스러우니 안 붙는 게 좋다.

6. 그런데 몸을 봐야 하니 붙으면 좋다.

7. 그런데 서로가 민망하니 안 붙는 게 좋다.

8. 그런데 이왕이면 돈 들여하는 거니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붙는 게 좋다.

9. 그런데 안 붙는 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붙는 게 좋은데, 붙으면 민망하다는 딜레마에서 해어 나올 수 없었다. 무엇보다 나도 발레리노 같은 모습으로 사람들과 함께 할 마음도 용기도 없었다. 




이 아슬아슬한 경계에 맞춰 운동복을 찾아야 했다. 우선 바지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첫 번째로는 집 옷장에 있는 운동복 바지. 센터에 상담전화를 했을 때 복장은 너무 펑퍼짐 하지만 않으면 운동복을 입어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붙으면 붙을수록 좋다고 했는데... 내 돈 내고 하는 건데 효과를 극대화해야 뽕을 뽑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기능적으로도 뽀대로도(?) 탈락.


남은 건 조거팬츠와 레깅스다.

조거팬츠는 무릎 위로는 품이 있고 아래로는 붙는 스타일인데, 어느 정도 다리 품을 확인하면서 민망함을 보완할 수 있는 복장이다. 

레깅스는 외곡 없이 자세를 확인할 수 있지만 유튜버 김계란이 아닌 이상 당당하게 입기 어려운 복장이다. 그러나 걱정 마시라! 남자들은 위에 반바지를 입는 방식으로 자신감을 상승시킬 수 있으니!(레깅스와 반바지가 결합된 상품 / 따로 분리된 상품으로 나뉘어 있다.)

목적/기능적으로 생각했을 땐 당연히 레깅스가 압승이다. 하지만 아무리 반바지가 있다고 해도 어색함과 민망함을 외면하긴 어려웠다. 


선택장애로 이틀정도 고민하던 중, 동네 헬스장에 가는 남자가 레깅스를 입고 가는 모습을 보며 선택의지를 굳혔다. 내가 저것만 입고 다닐 용기는 없지만, 적어도 운동 중에는 입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상의에 대한 고민은 크지 않았다. 그야말로 너무 큰 옷만 아니면 되니까. 문제는 어디서 뭘 사느냐였다.


필라테스복/요가복은 대부분 여성복 위주로 남성용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이 없다.


'이상하다. 분명 남자들도 할 텐데... 강사 중에도 남성 필라테스 강사도 존재하는데 과연 그들은 어디서 옷을 살까? ' 


한참 머리를 굴리다가 장르를 확장해 봤다. 


'남자들은 대부분 웨이트를 선호한다. 그리고 헬스장에서 몸매 뿜뿜 하는 형님들은 몸이 부각되는 레깅스와 타이트한 옷을 입는다!'


간단하게 해답이 나왔다. 헐크 같은 형님들처럼 골반까지 파인 나시를 입을 수는 없지만, '머슬핏'이라고 나오는 슬림형 운동티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겸사겸사 레깅스도 같이 구입할 브랜드가 있다면 좋겠다. 이왕이면 깔롱이 맞는 게 좋으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젝시믹스 브랜드를 선택했다. 레깅스 위주의 브랜드를 검색하다 보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여자라면 안다르나 뮬라웨어 같은 브랜드도 함께 고민했을 텐데, 남성복을 파는 곳은 젝시믹스뿐이었다. 

강제 아닌 강제로 선택한 브랜드지만 나쁘지 않았다.(사실 비교할 대상이 없어서 '원래 그런 거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다.)




나흘 만에 운동복 주문을 성공했지만 끝이 아니었다. 아주 작은 디테일. 양말이 남 있다.


필라테스는 기구를 이용해 움직이는 동작들을 하다 보니 미끄러지거나 안정적인 자세를 위해 바닥에 밀림방지 처리가 된 양말을 신어야 했다. 블로그를 조금만 찾아봐도 '카운터에서 양말도 팔았어요' 하는 글 쌓여있다. 그만큼 필라테스에서 양말은 중요한 포인트라 생각됐다.


문제는 이것 역시 남성용은 제한적이라는 거.


여성용은 다양한 색상, 다양한 디자인에 무릎에서 발목까지 다양한 길이의 양말들이 존재했다. 그런데 남자 필라테스양말은 검색조차 쉽지 않았다.(지금은 상품이 좀 있다.) 

'남자 + 필라테스 + 양말'이 세조합에 들어맞는 상품이 없어 한참을 방황하던 중 '남자 요가 양말'이란 키워드에서 상품이 있는 걸 발견했다.


기쁨과 동시에 껄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디자인이 발가락 양말이다. 나이 많은 회사 부장님의 무좀양말 같은 인상이 강해 거부감이 들었다. 여자들 거는 산뜻한 컬러에 디자인도 이쁜데, 남자 건 왜 이런 걸까? 색상은 또 왜 이렇게 칙칙한 회색인거지? 밝기라도 좀 더 밝게 해 주지 꼭 이렇게 찜찜한 색상으로 했어야 하나? 이게 최선인가?


절박함은 초월적인 검색능력을 발휘하게 했고, 마침내 검정 색상의 미끄럼 방지 양말을 찾을 수 있었다. 레깅스도 검은색이니 어울릴 것 같았다.


아. 물론 디자인은 발가락 양말이다. 

사람들이 오해하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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