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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Oct 18. 2023

#8 남자도 필라테스가 효과 있을까?

"차라리 헬스장을 가는 게 낫지 않아?"

여자가 필라테스를 한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이해한다. 그런데 왜 남자가 필라테스를 한다고 하면 애매한 물음표가 먼저 떠오를까?


"남자라면 자고로 중량을 팍팍 쳐서 탄탄하고 울룩불룩한 근육을 만들어야지!"


저 뻔하디 뻔한 멘트에 이미 답이 있다. 


'패션근육'이라는 말이 있다. 건강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겉근육만 과도하게 키운 근육. 나는 이 패션근육이라는 단어에는 '운동효과'라는 의미가 빠진 것처럼 생각된다. 물론 뭐라도 한다면 당연히 운동이 되겠지만, 내가 말한 운동효과는 '어떤 목적으로 하는가'의 의미다.


애초에 운동이란 무엇인가?! 건강한 신체를 위한 단련 아니던가! 내가 강한 힘이 필요하다면 고중량의 피트니스가 맞을 것이고, 건강한 신체를 위해서라면 속근육을 단련시키는 필라테스가 큰 도움이 된다.(물론 피트니스도 건강증진을 큰 도움이 된다)


어떤 목적으로 어떤 효과를 기대하며 어떤 운동을 하느냐의 문제다.




피트니스에 대해 많이 하는 질문은 "그거 좀 해서 힘이 드냐?", "그거 운동이 되냐?"다.

몇십 Kg씩 드는 모습과 비교했을 때, '그냥 다리 좀 올리고 팔 좀 뻗는 게 얼마나 운동이 되겠느냐' 하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건 정말 필라테스에 대해 1도 모르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유튜브를 찾아보면 운동을 많이 하는 걸로 알려진 김종국, 윤성빈은 물론이고 여러 헬스트레이너들이 필라테스를 배우러 가서 헉헉대고 헥헥대며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굳이 운동강도에 대한 설명은 더 하지 않겠다.


효과에 대해서도 사실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애초에 군인/포로들의 '재활'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만큼 신체능력향상이 반드시(?) 따라오는 운동이다.(열심히 했다면) 


고중량운동을 할 때는 많은 힘을 필요로 하는 만큼 큰 근육들이 먼저 자극된다. 그래서 속근육을 자극하기 어렵다. 평소의 운동으로는 자극할 수 없는 속근육까지 채우면 이전보다 더 무거운 중량을 들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필라테스를 따로 배우는 헬스트레이너도 많다고 한다.


필라테스는 중력과 스프링의 반동등을 이용해 부하를 가한다. 꼭 무거운 걸 들어야만 힘들고 운동이 되는 게 아니다. 맨몸으로 산을 오른다고 안 힘든 게 아닌 것처럼.




그룹수업을 할 때는 내가 원하는 부위만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아쉬워 마시라!

다리운동을 한다고 해서 다리 근육만 쓰고, 상체를 한다고 해서 상체만 이용하는 게 아니다. ‘어디에 조금 더 집중하는가?’의 차이일 뿐, '전신운동'이 기본이다. 


필라테스는 점진적으로 동작이 진행된다. 예를 들자면 무릎을 꿇고 푸시업을 10회, 다음에는 무릎을 떼고 정자세로 10회, 그다음 한 손으로 10회 하는 식으로 한 가지 동작을 심화시키며 부하를 가중시킨다. 연속되는 횟수로 힘은 빠져나가는데 동작 난이도는 더 올라가다 보니 어지간한 중량 운동만큼 힘이 든다.


필라테스 동작은 빠르지 않다. 게다가 고정돼있지 않은 자세에서 동작을 실행해야 한다. 최대한 반동을 줄이고 온전히 신체 밸런스를 컨트롤하며 수행한다. 다리 운동을 한다고 하면 다리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복근을 조인 상태로 다리를 움직이고, 몸통을 회전시키면서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잡아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피트니스의 모든 동작들은 전신이 기본이다. "오늘은 다리 운동 할 거예요"라고 말하고는 상체를 더 많이 움직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니란 뜻이다.


그래서 주 2회라는 긴 텀을 갖고 운동해도 어느 한 부위가 오랫동안 쉬는 일이 없다.




내가 필라테스를 체험하면서 놀란 건, 여자분들이 오히려 덜 힘들어한다는 사실이다.

조금 더 근력을 필요로 하는 자세도 여자들은 거뜬히 해냈다.(차별적인 의미가 아니다.) 사람마다 개인차이는 있지만 신체구조적/물리적으로 남성의 힘이 더 세다. 그런데 내 다리만 통제불능으로 후들거리고, 다른 사람들은 우아한 백조처럼 동작을 수행했다. 


유연성 차이 때문이다. 똑같이 다리 찢기를 해도 여자는 그냥 다리를 펴면 자세가 완성된다.(물론 개인차가 있다.) 반면 남자들은 억지로 다리를 찢기 위해 고통을 참고 더 많은 힘을 줘야 한다. 심지어 그렇게 해도 턱없이 부족하다. 옆에서 보기에는 뭐 하나 싶겠지만 나는 나와의 처절한 사투 중이었다. 


처음 필라테스를 배울 때는 이 부분에서 자괴감이 좀 왔다. 


'내 몸 상태가 이렇게 까지 안 좋은가?'


남들은 쉽게 하는데 그 절반만큼도 못하는 내가 땀을 뻘뻘 흘릴 때면 현타가 세게 왔다. 평소 스트레칭이라도 좀 할걸. 앉고 눕고 걷는 거 말고는 한 게 없는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그러고선 집에 가서 똑같이 반복.)


그런데 어느 순간 옆사람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팔다리는 흔들림이 없는데 미간이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숨통이 터지듯 컥컥 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다시 보니 10초의 동작 유지시간도 못 채우고 미리 동작을 풀었다. 


'아. 다들 나처럼 똥 쌀 만만큼 죽을 맛이구나.'


그 순간 묘한 동질감이 생겼다. 생사를 함께한 전우애는 특히나 돈독하다고 하는데, 딱 그 심정이었다. 대화 한번, 눈빛 한 번 나누지 않았어도 같이 '어휴 죽겠다'라는 생각을 한다는 게 반가웠다.


남의 고통이 내 운동의 원동력이 됐다.




어느 운동이나 마찬가지다. 얼마나 집중해서, 얼마나 열심히, 얼마나 꾸준히 하느냐에 따라서 운동 효과가 달라진다.

결국 필라테스도 마찬가지다. 멋진 근육질이 아닌 건강한 신체가 목표라면 필라테스는 적극추천이다.(물론 다른 운동도 건강해진다.)


(비전문가로서) 지금 말하는 '건강한 신체'라는 의미는 운동능력적인 부분이다. 일상생활에서 잘 쓰지 않는 근육과 관절을 단련하게 된다. 


어릴 때는 태권도를 배워서 다리도 쭉쭉 잘 찢어졌었는데, 지금은 90도도 벌려지지 않는다.(스스로도 믿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다.) 당연히 상체를 숙여서 바닥에 손이 닿지도 않았고, 다리를 쭉 펴고 ㄴ자로 앉는 것도 뒤로 발라당 넘어가서 힘들었다.


이쯤 되면 내 엄청 살이 쪘거나 신체적 결함이 있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질병도 병력도 없는 184/72인 평범한 신체다. 태어나서 담배는 단 한 번도 입에 대본적 없고, 술도 두세 달에 1번 정도 마시는 수준이다.(사람 만날 때만 마시고 심하게 취하게 마시지도 않는다. 대충 한 병 정도)


그저 게으름이 석고처럼 들러붙어 몸을 굳게 만들었다.


그런 내가 상체를 숙여 손끝을 넘어 주먹이 바닥에 닿는 수준이 됐다. 자고 일어나도 허리가 쑤시는 일이 줄어들고, 뻐근함에 몸이 피로하다고 느끼는 일도 줄었다.(운동이 힘들어서 피로한 건 제외...)

겉보기에는 별로 달라진 게 없지만 체감하는 바는 크다. 정확히 말해서 무언가 더 나아졌다기보다는, 불편했던 것들이 하나씩 해소된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이렇게 미치도록 힘든데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진짜 억울해서 미쳐버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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