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열차가 만원이다. 어디서들 쏟아지는 건지 출근 때보다 더 많다. 이미 꽉 찬 열차에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 때문에 손잡이는 포기하고 사람 발을 밟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이 상황이 참 불편하면서도 묘한 안정감이 있다.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려고 밀어대는 사람들. 여기에 저항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짓눌려있다 보면 벽에 기댄 듯 편해진다. 그렇다고 진짜 몸을 실어 기대면 안되지만... 이 편안함에 넋 놓고 취해있으면 안 된다. 열차의 작은 움직임에 사람들이 한쪽으로 쏟아진다. 이때만큼은 혼신의 힘을 다해 버텨야 한다. 이 틈에서 다시 일어날 자신이 없다.
숨 막히는 인간들 속에서 숨 막히는 인간관계를 생각해 본다. 주변에 신경 쓸 사람이 적을 때는 티가 안 난다. 문제는 퇴근시간 열차처럼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감정노동을 요구받을 때 한계가 드러난다. 호의가 계속되면 둘리라고 했던가? 한두 번 고민상담을 해주던 것도 내 한계를 생각지 않고 끝없이 이어지면 곱게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문제는 일상에서 단 한 명을 상대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일상에서 가볍게 마주하는 사람과의 관계들은 그 순간 '나와 너'의 관계로 감정을 나눈다. 그 순간만 '나와 너'지, 하루를 생각하면 '나와 너희'다. 나 한 사람이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거다.
이렇게 제각각의 사람들이 자신의 실속만 챙기려고 하니 불편함만 쌓인다. 서로 조금만 양보하면 될 것을... 한 사람이 밀치기 시작하면 그걸 버티기 위해 상대방도 같이 힘을 줘야 한다. 말없는 기싸움은 점점 주변 사람들까지 밀쳐지며 도미노처럼 퍼져간다.
이 꽉 찬 관계들 속에서 넘어지지 않고 버틸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모두가 휘청일 때 혼자 버텨낼 수 있는 노하우. 주변 분위기,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목적지까지 가려면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
나는 멀쩡한지. 이 사람이 내게 필요한 사람인지. 스스로를 좀 더 살피고 케어하자.
사람이 빠지면 숨좀 트이고, 사람들이 더 타면 좀 더 넓은 틈새를 찾아가는 것처럼, 변화에 맞춰 내가 살 길을 스스로 찾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