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가 Feb 27. 2024

지나간 마음에 힘들지 말자.

정리되지 않은 마음만큼 시간이 흘러내린다. 

다음으로 넘어가야 하는 발걸음은 지나버린 늪에 빠져 내딛기가 쉽지 않다. 힘겹게 나아간다 한들 질척이는 마음이 진흙처럼 자국을 남긴다. 


마음은 물통에 붓을 담그면 물감이 새어 나오듯 예측할 수 없는 모습으로 퍼져나간다. 그 부분만 조심스럽게 떠내보려 하면 작은 물결을 타고 도망친다. 휘휘 저어 섞어버린다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세상 모든 것에 마음이 뒤섞여 잔상처럼 따라다닌다.


이게 진짜 물이라면 모두 버리고 새로 받으면 된다. 하지만 마음은 쉽게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과거에 묶여 계속될 뿐이다. 모든 건 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오랫동안 아플 뿐이다.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는 거란 말이 있다. 즉, 마음은 다른 마음으로 덮어야 한다는 뜻이다.

색이 뒤섞인 물감통은 검정에 가깝게 탁해진다. 그 안에 물을 붓는다. 한 컵. 두 컵. 그냥 콸콸콸 물을 틀어둔다.

검은 물과 새물이 뒤섞여 소용돌이치며 넘쳐흐른다. 물통 안은 여전히 어둡고 새로운 물만 튕겨 쏟아지는 것 같다. 그렇게 조금 지나면 물통 안이 속을 비쳐 보인다. 완전히 맑은 물이라고 할 순 없지만 이 정도면 괜찮지 싶다. 


비로소 감당할 수 있을 만한 마음의 순간이 찾아온다.

더 이상 아프지 않고 과거에 끌려다니지도 않는다. 그저 '그랬었다'라는 기록 같은 기억으로 남을 뿐. 어느새 내 마음은 새로운 색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 아니, 자기도 모르게 이미 받아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은 미련하게 아파하고 있으라는 게 아니다. 스스로 맑은 물을 받아 검은 마음을 정화하는 노력의 시간을 말한다. 누군가에겐 단순히 마음을 다잡고 결심을 굳히는 시간이 수도 있고, 취미나 공부, 운동처럼 다른 것을 채우는 시간일 수도 있다. 


지난 마음은 환영과 같다. 끝없이 나타나 고통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환영은 말 그대로 환영이다. 무시하고 지나치면 사실 그곳엔 아무것도 없던 것이다. 그 족쇄에서 해방되면 기쁨보다 허망함이 더 클지 모른다. 

'왜 그동안 이런 거에 힘들어했을까?'

놓아버리면 그만큼 의미 없는 것이다.


아프다면 시간을 기다리지 말고 시간을 들여라. 새로운 물을 채우면 탁함에 가려졌던 지금, 그리고 앞으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왜 내가 쓴 글은 항상 불만족스러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