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가 Feb 29. 2024

아무도 내게 부담을 주지 않았다.

어릴 때는 반마다 "넌 커서 개그맨 해라."라는 말을 듣는 학생들이 한 둘씩 존재했다. 그게 나다. 그런 수식어를 가져갈 만큼 수다가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사람을 안 만나나 보니 점점 말을 하기가 어렵다.


그나마 통신을 이용한 소통은 괜찮다. 여차하면 이모티콘만 날려도 된다. 뉘앙스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감정교류는 성립된다. 대화에 큰 의미가 없어도 시답잖은 말 하나 투척하고 이어간다. 모임이나 단톡방의 경우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니 알아서 말꼬리가 따라붙는다. 


그런데 손가락으로만 말하다 보니 입이 굳어버렸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좀 더 부담스러워지고, 막상 만나도 입을 열기가 어렵다. 어차피 이렇게 소통하는데 굳이?


물론 사람은 사람이 그리운 법이다. 정서적 교류가 계속되면 만나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 그런데 막상 '만날까?' 하면 갑자기 부담이 쌓인다. MBTI에서 'I'를 담당하는 사람 사람의 마음이다. 

나는 말이 많지만 조용히 있는 것도 좋아한다. 조용히 독서도 좋고 멍하지 분위기를 느끼며 음악을 듣거나 풍경을 봐도 좋다.


그러는 동안에도 마음은 혼란스럽다. 

'나는 지금 좋은데, 상대방도 이런 분위기가 괜찮을까? 막상 만났는데 뭔가 더 해야 하지 않을까? 대화해야 하지 않을까? 뭘 봐야 하나? 뭘 먹어야 하나?'

난데없이 책임감 비스무리한 무언가가 평온한 나를 채찍질한다. 


이 부담감이 싫어서 누굴 만나기 전부터 기가 빨리는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만나는 횟수가 줄고, 그러다 보니 사람을 대하는 스킬이 줄고... 악순환이다.


정작 만나면 말은 잘한다. 처음부터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타고난 기질은 못 고친다고, 사람들과 있으면 분위기에 뒤쳐지는 일은 없다.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올라가는 내 텐션에 재미있어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사람들과 말하기가 어렵다. 말은 제일 많이 하면서 말하기가 어렵다니 이런 궤변이 있나!


이건 분명 내 마음 탓이다. 

남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 이 상황을 좋은 기억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 남을 생각하는 마음. 그 모든 걸 혼자 끌어안으려는 마음.


그 마음은 욕심이다. 스스로에게 내리는 마음의 형벌. 내가 뭐라고 그걸 다 책임지려 하는 걸까? 누구도 나에게 맡기거나 기대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기억하는 것도 좋은 기록이다. 응당 사람관계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어떤 행동을 할 때, 도전을 할 때, 시작에 앞서 고민의 형벌을 받을 필요는 없다. 


그냥 맘대로 좀 하자.

그저 그런 하루였던 거뿐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지나간 마음에 힘들지 말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