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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Apr 25. 2023

'나' 파악하기

나는 '아직 많이 살아보진 않았지만'이라는 말이 민망할 만큼의 세월은 살았다고 생각한다. 해본 일에 비하면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다. 

TV를 보면 가끔씩 알바를 몇 개씩 하고 이런저런 실패와 도전을 반복하며 성공을 위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나온다. 열심히 살고 성공한 사람들. 성공하지 않았더라도 성공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는 사람들. 그런 걸 볼 때면 내 삶을 비교하게 된다.

나도 나름의 노력은 하고 살았다. 백수로 지낸 것도 아니고, 나름 일도 하고 뭣도 하면서 틈 없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음이 채워지질 않는다. 속이 텅 빈 마네킹처럼 사람들에게 보일 구색을 갖추고 싶어 뭐라도 하고 있을 뿐, 열정적이라 생색낼 만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의 노력들은 그 순간순간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바둥대는 노력이었다. 쓰러지지 않으려는 발버둥. 제자리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목표와의 거리는 전혀 줄어들지 않는데 말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음... 처음부터?

나는 어릴 적 아버지를 몹시 무섭게 기억한다. 그 시절은 잘못을 하거나 말을 안 들으면 빗자루로 맞는 게 당연했던 시절(?)이라, 넘을 수 없는 마음의 벽이 존재했다. 그런 마음으로 성장하다 보니 나중에는 굳이 혼나지 않아도 미리 혼날까 봐 겁을 내고 조심스러워졌다. 외동아들이기 때문에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스스로를 압박했다. 그게 습관이 된 모양이다.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한다. 좀 더 확실하게 계획해서 실패의 확률을 줄이고 안전한 길을 찾는다. 하지만 늘 결론의 끝엔 그런 길이 없었다. 완벽한 길은 과거에만 존재할 뿐.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아는가? 상자 안에 고양이와 독이 든 음식을 함께 넣었을 때, 상자를 열어 고양이의 상태를 확인하기 전까지의 고양이는 살아있으면서도 죽어있고 죽어있으면서 살아있는 상태라는 이론이다.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삶과 죽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 상자를 열어서 결과를 확정 지어야만 하나의 답으로 정의될 수 있는 거다.


내가 하는 고민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같다. 아무리 실패의 가능성을 줄이고 줄여도 결국 티끌만큼의 실패 확률은 존재한다. 그리고 결국 그 확률 때문에 겁을 먹고 도전을 거둔다. 시도해보기도 전에... 그래서 현실에서 실행하는 일들을 나열해보면 심플 그 자체다. 


나는 쌓이지 않은 경험이 아쉽다. 젊었을 때는 사서 고생한다고 하지 않는가. 도전도 해보고 실패도 하면서 데이터를 차곡차곡 쌓았어야 하는데, 내게 자료는 가상의 시뮬레이션뿐이고 실질적 데이터가 너무 부족하다.


그래서 한 때는 실패하기 위해 도전을 한 적도 있다. 당연히 안될 걸 알았지만 '실패하면 안 돼!'라는 강박을 이겨보고자 의류 쇼핑몰을 도전했었다. 결과는 오픈하기도 전에 공중분해! 그래도 내가 원한 '제대로 된 실패'를 처음으로 겪은 순간이었다. 기쁘고도 속이 쓰렸으면서, 이후에 무슨 일을 할 때 지표 삼아 나아갈 수 있는 등대가 됐다.


더 이상 실패는 없어야겠지만, 도전은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월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가장 아쉬운 건 성공과 실패, 뭔가 이뤄낸 게 없다는 생각보다, 그런 것들을 도전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더 남는다. 아직 스스로의 장벽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극복하기 위해서 작은 일들을 실행하는 중이다. 실패하고 넘어져도 많이 다치지 않을 만큼 작은 일들로.

이렇게 또 한 번의 세월을 보내고 나면 더 이상 미리 두려워할 일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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