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가 Apr 24. 2023

모든 곳에 내가 있을 수는 없다.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곳에서 나만 빠지게 됐을 때, 느른한 슬픔에 빠져든다. 스르르 바닥을 훑으며 다가온 소외감이 나를 덮쳐들 때, 세상에 불필요한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얼마 전 나는 새로운 오프라인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모임은 3회 차 정도 진행된 신생 모임으로 아직 진행에 미숙한 점들이 느껴졌다. 기대감을 안고 간 내겐 그마저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와 함께 모임이 커질 수 있다는 괜한 기대도 해봤다. 당일 즉흥적인 뒤풀이까지 참석해서 사람들과도 금세 친해졌다.


 책을 읽어야 하는 독서모임 특성상 모임의 주기는 길었다. 모임을 2회 더 진행하는데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책 한 권을 1주일씩 보는 내겐 잘 된 일이다. 하지만 설렘으로 가득한 마음에겐 기다리기 불편한 시간이었다. 결국 지루한 오랜 텀을 버티지 못하고 중간에 따로 몇 인원들과 가볍게 식사 만남을 갖었다.


 평범하면서도 이상적인 흐름이라 생각했다. 공통의 방향성을 지닌 사람들과 금방 친해지며 모임 내에서 조금 더 깊이감 있는 구성원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내 멋대로 쌓아가던 친밀감은, 한순간에 돌아서서 실망을 안겼다.


 개인의 사정이란 게 있으니, 당연히 모임에 참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게 당연히 나일 수도 있고.

 다음 날 단체 톡방에서 내가 모르는 상황의 대화가 친근하게 오갔다. 즐겁게 공유되는 기억 속에서 나는 공유되지 못한다는 게 깊은 소외감이 불러들였다. 질투였다. 앙탈이었고, 어리숙한 미움이었다. 갑작스런 감정이 상황을 밀어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떠들던 톡은 줄이고, 상처받을 거에 대비해 미리 조금씩 마음의 거리를 벌렸다.

 긴 듯 짧은 기간이었다. 그 안에 많은 톡을 나눴지만 적은 만남을 갖었다. 옹졸하게 판단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지만 나는 감정을 닫고 있었다.


 온전히 이곳에서의 문제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요즘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많은 회의감과 고찰에 물들어 있었다. 독서모임도 새로운 만남을 통해 관계성의 답을 찾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저 모든 고민의 불똥 독서모임으로 튄 것이다. 타이밍이 안 좋았다.


 독서모임을 계기로 다른 모든 관계를 끊고 싶다는 생각이 퍼졌다. 어차피 독서모임이 아니어도 월에 네 권씩은 꾸준히 읽고 있어서 아쉬울 건 없었다. 그래도 갑작스럽게 사라지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아 남길 말을 정리하느라 며칠이 지났다. 그때 종일 잠만 자던 전화기가 울었다. 독서모임 인원 중 한 명. 대충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시시한 안부전화였다.  전화 한 통에 홀랑 벗겨진 듯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변명할 것도 없다. 나는 그냥 혼자 삐져서 스스로 외롭게 만들 변명만 찾고 있던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만났을 때도 모든 인원과 함께하진 않았다. 함께하지 못한 사람을 부정적으로 해석하지도 않고, 다음날 톡방에서 쉬쉬하고 있지도 않았다.  사람들과의 즐거움을 되새기며 톡을 나눴다. 대화는 사람들과의 만남 그 자체에 대한 해석만 있었다. 그리고 이번 만남의 사람들 역시 같았을 거다.

 정확히 똑같은 상황. 오직 그곳에 내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멋대로 스스로에게 부정의 낙인을 찍었다. 그들과 멀어졌다고 생각했고. 더 이상 그 틈에 내 자리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징글맞게 멍청한 생각이다.

 내가 문제다. 사실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괜한 질투를 핑계로 가리려 했던 걸. 그 한 통의 안부전화를 통해 내 잘못을 인정할 수 있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지만, 이 세상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인 것처럼, 그의 인생도, 그녀의 인생도, 그것의 인생도 각자가 주인공이다. 모두 주인공인 세상에서 모든 것이 내 위주로 돌아가길 바라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


 사람이라는 게 참 그렇다. 타인에게서 내 존재의 가치를 찾으려 들 때, 절망감이 찾아온다. 남에게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지 말고, 스스로 자립해야 한다. 오롯이 나 혼자서도 존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모두 주인공의 모습으로 함께 할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위태롭게 남에게 기대는 게 또 사람이다. 

참 어렵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은 세 잎 클로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