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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Apr 26. 2023

내 꿈은 헤어디자이너 '였다'.

내 전공은 헤어디자인이다. 미용고등학교를 나오진 않았지만 뒤늦게 꿈을 좇아 미용학원을 다녀서 미용과가 있는 대학으로 진학했다. 인문계 남고에서는, 적어도 우리 학교에서는 유일무이한 특이 케이스다.

인문계에서 공부로는 도저히 싹수가 안보이던 나는 미리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선택했다면 '역시 공부 못하는 것들이 미용 쪽으로...'라고들 하지만 편견이다.


외가 쪽으로 우리 집안에 헤어디자이너가 넷은 된다. 어릴 적 엄마가 청담동에서 미용실을 운영해 몇 번 따라 간 기억도 선명하다. 익숙한 환경 탓인지 헤어디자이너에 대한 호감은 긍정적이었다.

언젠가 봤던 책에서 '머리카락은 여자의 생명'이라는 말을 본 게 중요한 포인트였던 것 같다. 생명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 멋지잖아?!

여러모로 아다리가(?) 들어맞아 미용은 운명처럼 선택하게 됐다.


마음이 가는 일을 하다 보니 자동으로 열정이 타올랐다. 대다수가 여자들인 미용과 특성상 몇 안 되는 남자들은 뒤쪽에 뭉치기 마련인데, 늘 교수님 바로 앞자리를 차지하는 통에 교수님들의 이쁨을 많이 받았다. 아... 그래도 영어수업만큼은 앞에 못 앉겠더라...

 

경력이 곧 실력이 되는 일이다 보니 군대로 낭비되는 시간도 아까웠다. 1학년을 마치자마자 군에 지원 입대해서 1월에 입대했다. 심지어 이발병으로 일과를 마친 후 자유시간까지 반납하며 미용의 끈을 놓지 않았다. 

다시 2년이 지나 1월 대학에 복학하면서 딜레이 없이 학업을 쌓았다. 여름방학이 되어 현장에 실습을 나가 그대로 취업으로 전환했다. 학교에서는 현장에서 실무를 쌓는 걸로 출석을 인증받고 시험만 보는 걸로 정리가 됐다.


실질적으로 2학년 여름방학 실습 때부터 내 꿈이 이루어졌던 거다. 


현장은 ㅈ정말 힘들었다. 과한 열정으로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통에 스스로를 혹사시켰다. 마른 편인 내가 한 달 반 만에 6kg이 빠졌었으니 얼마나 고되고 몰입했는지 설명이 될 것 같다. 그런데 그마저도 좋았다. 내가 열심히 하는 증거인 것 같아서 훈장처럼 생각하고 더 열심히 했다. 


물에 들어갔다가 바로 드라이기로 말리고를 반복하면서 손은 점점 건조해졌다. 거기에 독한 파마 약품이 손에 닿으며 손은 갈라지고 진물이 나면서 쳐다보기 힘들 지경이 됐다. 사실 이건 누구나 다 겪는 당연한 현상이라서 그저 참았다. 남들과 비교해보면 내가 좀 더 심하긴 했지만, 그만큼 내가 열심히 한다는 위안이 됐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나는 일을 그만뒀다.


독한 약품의 독성으로 손에 올라왔던 수포가 점점 퍼져가며 얼굴에서 발등까지 온몸으로 퍼졌다. 내가 2~3년 바짝 벌고 그만 둘 일이라면 참고했겠지만, 평생직업이라는 생각에 이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지배했다. 서비스 직업인데 고객들에게 수포로 울긋불긋한 얼굴로 마주하는 것도 죄송스러운 스트레스였다.


그렇게 길을 잃었다. 미용만 보고 왔기에 다른 일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기술직 특성상 다른 일에는 써먹지도 못해 멘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젊은 나이에 다른걸 새로 시작했으면 됐을 것을, 그 당시에는 꿈이 사라진 탓에 나아갈 길을 못 찾았다.


그렇게 방황 아닌 방황을 하던 차에 미용학원에서 함께 연습했던 누나의 소개로 함께 일을 했다. 

미용실이었다. 그렇게 내 꿈은 끝나지 않았다.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인데 뭘 어쩌겠나.

하지만 한참 후 그곳에서도 일을 그만뒀다. 그리고 다시 방황하다가 대학 복학해서 함께 공부했던 후배의 소개로 겨우 일자리를 구했다. 당연히 또 미용실이었다. 지독하게 끈질긴 끝나지 않은 인연.


결론을 말하자면 더 이상 미용과 관련된 일은 하지 않는다. 그것도 꽤 오래전부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는 파마 알레르기가 있다. 보통은 염색약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서 염색 전에 알레르기 테스트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파마 알레르기에 대한 사실은 생전 처음 들었다. 미용실 갈 때마다 파마 알레르기 이야기하면 현직 종사자분들도 도저히 상상도 못 할 일인 것처럼 놀라서 묻는다. 

아무튼 난 애초에 미용을 못 할 운명을 타고났다. 유독 나만 손이 더 갈라지더라니...


미용에 대한 꿈은 끝났지만, 내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용케 뭐든 하면서 살고 있다. 미용실을 그만두고서 방황했을 때는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끝난 건 그저 한 챕터에 불과했다. 어쨌건 나는 실패를 몇 번이나 겪었음에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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