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분과 가끔 테트리스를 한다. 게임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아내분이 그나마 하는 게임이다. 원래 게임을 좋아하는 나. 원래 게임을 안 좋아하는 아내분. 그 타협점이 테트리스다. 대단한 컨트롤도 필요 없고 그저 추억과 실력을 끌어올리기만 하면 되니까.
실력은 거의 대부분 내 승리다. 봐주 따윈 없다. 악착같이 이겨먹어야 속이 시원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최선을 다한다. 사실 나는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할 뿐. 이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다. 아내분의 눈치는 대결의 승패가 정해진 후에야 본다. 그렇다고 다음 판에 봐주지는 않는다.
나는 제일 오른쪽 한 줄만 비워두고 꽉 채우다가 길쭉한 일자 타일을 모아 한번에 공격하길 좋아한다. 시원스럽게 팡팡 터지며 아내분에게 공격 타일을 보내면서부터 슬슬 재미있어지는 순간이다.
아내분도 나와 함께 테트리스를 하면서 실력이 제법 된다. 내 공격을 신호삼아 치명적인 역공을 가한다. 이 악물고 날 한번 이겨보겠다고 정말 미친 듯이 공격 타일을 보낸다.
잠깐 사이 아찔한 높이까지 타일이 차오르고 이제 죽었구나 싶은 순간, 이게 왜 들어맞는지 스스로도 이해 안 갈 정도로 타일들을 줄여나간다. 이때부터는 계산하기보다 본능이 타일을 갉아먹는다. 마치 오랜 수련을 쌓은 무사가 눈을 감고 본능과 감각으로만 적들을 유린하듯이 타일의 빈틈을 찾아 매서운 공격을 가한다.
"아주 열심히 하시네...!"
그 순간 아내분의 말 한마디에 손이 잠시 움찔한다. 음... 현실의 나에게 찾아온 위기인가...? 등줄기가 으스스한 살기를 느끼면서 못 들은 척 공격을 한다. 와! 또 이겼다!! 아니, 또 이겨버렸다...
그렇게 세 판 정도 하고 나면 게임을 바꾼다. '동방스펠버블'이라는 게임으로 옛날 오락실에서 구슬을 맞추는 게임인 퍼즐버블에 리듬게임을 접목시킨 방식의 게임인데, 이건 꼭 한 끗 차이로 내가 진다. 이제부터는 아내분이 재미있어하는 순간이다... 이후 결과는 테트리스를 그대로 뒤집은 모습이다. 악착같이 공격해도 결국 역전의 가망이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깨진다. 덕분에 오늘 저녁밥상도 지켜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