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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Mar 20. 2023

한 침대 두 구역

우리 집 안방에 놓인 침대는 슈퍼킹 사이즈다. 지금은 라인업이 달라져서 조금 더 큰 사이즈도 나온 모양인데, 구매 당시에는 1800*2000으로 가장 큰 사이즈의 매트리스였다. 별로 자랑은 아니지만 괜히 자랑하고 싶다. 

굳이 이렇게 큰 사이즈를 구입한 데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잠을 잘 때 온갖 베개를 성벽처럼 둘러쌓고 자는 남자가 있다. 이 남자는 꼭 옆으로 누워서 베개를 끌어안고 자는데, 등 뒤에도 베개를 기대어 포근하고 아늑하게 자는 걸 좋아한다. 협소하게 구석에 낑겨서 자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넓은 공간은 필요 없다. 키만 작았다면 아이들이 사용하는 싱글 침대도 좋다고 할 사람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똑같이 옆으로 누워 기다란 베개를 끌어안고 자는 여자가 있다. 이 여자는 몸에 열이 많은 뜨거운 여자다. 대체적으로 이불을 잘 안 덮는다. 그것 빼곤 특별한 잠버릇이 없어서 역시 좁은 공간에서도 잘 잘만한 사람이다.


이 두 사람이 한 침대에서 잔다. 

제일 처음 사용한 침대는 퀸사이즈 침대였다. 요즘 트렌드는 모르겠지만 결혼 당시에는 가장 많이 찾는 사이즈였다. 나중에 어떤 집에서 살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마냥 큰 것보다는 대중적인 퀸사이즈가 적절한 선택이었다. 실제로 넉넉한 사이즈에 만족감이 좋았다.


그렇게 달콤한 신혼 때부터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밤을 보냈다.


남자는 애정 어린 마음으로 여자를 꼭 안고 자려고 했다. 하지만 여자는 잘 때 닿는 걸 싫어했다. 손발이 차가운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불타는 신혼 때의 과도한 시그널 따위가 아니다. 그저 함께 누워서 꼭 껴안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아내분은 팔 한쪽 올리는 것도 싫어했다. 무겁단다. 팔 하나 얼마나 무겁겠냐 싶지만 어쨌건 무겁단다. 손만 하나 올려본다. 몸을 틀어 돌아 눕는다. 민망해진 손을 수거한다. 결국 마음이 상해 침대 끝으로 돌아 누운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신혼생활 서로 등 돌리고 지냈다. 이불도 두 개. 서로 온도가 다르니 이불도 각자 두께가 다르게 사용했다. 결혼생활이 오래된 분들이라면 바람직한 취침자세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신혼이었다. 최소한 불타지는 않아도 함께하고픈 시간 아닌가? 오해든 이해든 간에 내 마음은 그러고 싶었다. 결국 침대 끝에서 아내분의 이물 끝자락을 쥐고 자는 걸로 스스로 위안했다. 그마저도 놓아버리면 마음마저 놓아버릴까 봐.


그런 날들이 반복되면서 나 자신의 수면자세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옆으로 누워 뻗은 팔이 아내분에게 닿을까 봐 기묘하게 몸을 틀었다. 팔을 내려 다리사이에 꼬아서는 자리를 줄였다. 

이런 수면자세 때문인지, 침대 스프링이 맛이 간 건지, 한동안 지독한 허리 통증이 이어졌다. 허리가 시큼 거리며 근육통처럼 늘 뻐근했다. 목에 담도 자주 왔다.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하고 버티는 시간이 두어 달이 지났다.


결국 퀸사이즈 침대를 새로운 침대를 교체하기로 했다. 통증이 침대 교체의 가장 큰 원인이었기에 사용감이 중요했다. 최대한 오프라인 매장을 돌아다니며 직접 느낌을 비교하고 인터넷 후기들을 참고하며 엄선했다.

사용감에 있어서도 우리의 성향을 갈렸다. 푹신한 사용감을 좋아하는 나와 탄탄한 사용감을 좋아하는 아내분. 음... 어렵다 어려워.


그렇게 약 한 달 정도가 지나서야 겨우 시몬스에서 슈퍼킹 사이즈의 침대를 들이게 됐다. 할부로. 가격적으로 시몬스가 비싼 브랜드였지만 내 통증을 잡아줄 치료 값이라고 생각하며 선택했다. 가격에 헉소리를 내면서도 가장 큰 사이즈를 구매한 건 추가 설명이 안 붙어도 될 것이라 믿는다. 


침대를 바꾸고 가장 만족한 점은 통증이 사라진 것이다. 구름 위에서 자는 것처럼 편안하다고는 못하지만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추가로 해결된 부분은 수면 구역이다. 조금 늘어난 만큼 조금 더 편하게 멀어질 수 있었다. 음. 말이 이상하긴 한데, 더 이상 거리를 벌리기 위해 억지로 몸을 압축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다.

큰 침대를 산 이유는 별 거 없다. 그냥 '이왕이면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내 신념을 지켰을 뿐이다. 정말로!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한 침대 두 구역에서 잔다. 처음의 서운한 마음도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포기는 아니고, 이해하고 적응하는 느낌이다. 욕심부린 적은 없지만 욕심이 사라진 듯하다.

여전히 팔 하나 못 올리고 있지만, 대신 손을 잡는다. 아내분도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손을 맞잡는다. 어쩌다 보니 "손만 잡고 잘게"를 실행 중이지만 이마저도 큰 만족이다. 불쌍히 여기지 마라.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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