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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Mar 15. 2023

일상이 무기력해질 때

무덤에 들어갈 때는 참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대단한 성공을 이루거나 영웅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사람됨이를 갖춘 멋진 인간. 젠틀맨 같은 거 말이다.

 

이성적인 롤모델이라고 하면, 영화 '인턴'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맡은 주인공 캐릭터가 딱 내가 원하는 인간상이다. 연륜이 부드럽게 녹아 사람들과 편하게 융화하고, 사건을 지혜롭게 해결하며, 성품 또한 산들바람 같은 사람. 외면보다 내면이 더 멋진 그런 존재가 되는 게 내 바람이자, 꿈이자, 이상이다.


헌데 지금의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반복되는 일상을 잿빛으로 느끼며 선명했던 나의 세상을 뿌옇게 덧칠하고 있다. 개선하거나 긍정적으로 이겨낼 생각은 하지 않고, 한탄과 권태로움을 무기력하게 순응한다. 

순응하다. 말만 들어선 조화롭게 잘 적응하는 일 같지만, 원치도 않는 마음을 품고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갑갑한 상황이다. 원하던 이상과는 달리 온화함은 날카로움으로 벼려지고, 지혜로움은 까마득함으로 뒤덮이며, 조화로움은 상황에 끌려다니는 걸로 포장된다.


거참. 이대로는 억울해서라도 무덤에 못 들어가겠다.  


세상을 탓할 마음은 없다. 어디 이게 나 혼자만의 문제겠는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불만족을 나 혼자 만의 불행인 것처럼 치렁치렁 옴몸에 휘어 감고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내 두 발로 찾아가는 걸 남 탓도 세상 탓도 할 마음은 없다.


그저 나 자신에게 꾸지람 하나쯤을 던져주고 싶은 마음이다. 이게 그렇게나 암울할 일이더냐. 언제까지 게으름에 변명만 늘어놓을 참이냐. 허리 쭉 펴고, 고개 바짝 들고, 지금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잘 살펴라.


마치 등대를 잃은 선박 같다. 사방이 똑같은 망망대해를 헤치고 있으나, 여기가 어딘지도, 어디로 나아가는지도, 심지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움직이고만 있다. 


번뜩 정신을 차려본다. 맞네. 그렇네. 그렇게 나아가고만 있었구나. 멈추지만 않으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거였다. 목적을 잃었다면 더 멀어지지 않도록 잠시 멈춰서는 것 또한 방법이다. 

이 당연하고 간단 한 걸 떠올리지 못했다. 


등대가 없다면 별자리를, 태양을 보면서 나아가는 것 또한 하나의 목적지가 될 수 있다. 사실은 목적을 잃은 게 아니라 목적을 지운게 아닌가 싶다. 침착하게 마음의 깃발을 찍을 작은 목적지를 설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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