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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Mar 14. 2023

어떻게든 될거라는 안일함

그때의 선택

두고두고 남는 기억이 있다. 후회라는 감정과 맞물려 지워지지 않는 기억. 엄청난 사건이 아니더라도 그때의 선택에 대한 아쉬움으로 쉬이 잊히지 않는다.


아마 첫째 효니의 돌잔치 때였을 거다. 몇 달 전부터 일하는 틈틈이 인터넷으로 장소를 알아보고 답례품을 고르고 사회자를 섭외했다. 이것저것 비교하고 비교하고 또 비교하는 성격 탓에 무엇하나 쉬운 결정은 없었다. 선택만으로도 2주가 넘어갔다. 더 이상 늦췄다간 진행 일정을 못 맞출 것 같아 눈 꼭 감고 힘겹게 결정을 내렸다. 원래 그런 성격이다. 시작하기까지가 문제지 일단 시작하면 제대로 해야 하는 성격. 


신경 쓰던 것들을 손에서 놓으니 숨통이 트였다. 일할 때도 잠잘 때도  머릿속에 계속 돌잔치 준비뿐이었는데, 마음이 편해지고 여유가 생겼다. 그동안신경 쓴 것에 보상받으려는 것처럼 일부러 더 신경을 껐다. 내가 할 건 다 했으니까. 그렇게 돌잔치 때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한 달 정도 후 돌잔치 날이 됐다. 답례품도 미리 도착했고 포토액자도 잘 준비 됐다. 음식이나 자리는 업체에서 다 해주니까 내가 신경 쓸 부분은 없었다. 섭외했던 사회자도 늦지 않게 도착해 가벼운 인사를 나눴다. 모든 게 나이스하다.


효니는 사람들 사이를 울면서 질주했다. 입장은 내가 조종하는 무선 자동차를 타고 했는데, 많은 사람들 사이에 엄빠에게서 떨어져서 오는 게 낯설었던 모양이다. 작은 해프닝을 시작으로 내가 준비한 효니 영상을 감상하며 돌잔치가 진행됐다. 순조로웠다. 번호 뽑기 이벤트나 돌잡이 같은 정석적인 흐름을 이어갔다.


사회자가 내게 귀빈들께 하고픈 말을 하라고 했다. 처음 만났을 때 오늘 진행 식순을 훑어주면서 말하는 ㅅ간이 있으니 내용을 준비하라고 했던 부분이다.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대충 와주셔서 고맙고 잘 키우겠다는 말을 했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게 익숙지 않아 머쓱했다.


다음 순서로 넘어가... 야 하는데 사회자가 더 할 말 없냐 물었다. 내가 너무 짧게 말했나? 사실 이런 자리에 감사를 전하는 말은 뻔한 내용이라고 생각해서 미리 준비를 안 했다. 그러니 할 말은 두서없고 내용은 짧았다. 역시 능숙한 사회자는 내 부족함을 잘 지적한 것 같다. 전문가가 쥐어준 기회를 잡아 짜내듯 아내분에 대한 감사를 전함. 아무리 효니의 첫 생일잔치라지만 우리 가족이 맞는 첫 기념일이기에 함께 고마움을 전하는 게 옳다. 휴우- 하마터면 안 하고 넘어갈 뻔했다.


전문가의 어드바이스로 위기를 모면하고 나니 다시 한번 추가할 말 없냐고 한다. 응? 뭐냐...

초조함에 동공이 흔들렸다. 더 말할 거? 방금도 간신히 짜낸 건데? 불안한 시선으로 3초 정도 마주했다. 나는 할 말이 없다는 뜻을 쏘아 보냈는데, '분명히 더 할 말이 있을 텐데?'라는 눈빛이 돌아왔다.

불안하다. 초조하다. 뭔가 닦달하는 듯함에 머리가 새하얘진다. 순간을 영원처럼 머리를 굴려봤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결국 더 할 말 없다고 딱 잘라 말함으로 진행은 넘어갔다.


미처 준비를 못했던 부분에 긴장감이 휘몰아쳤지만 이후 진행은 매끄럽게 흘렀다. 어차피 돌잔치의 후반부였기 때문에 모두가 축하를 나누며 금방 끝났다. 

그렇게 처음이자 마지막인 이벤트는 성공적으로 끝맺었다.


그리고 몇 년이 한참 지난 어느 날, 아주 문득 돌잔치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극N에게 기억은 오래됨이 중요하지 않다. 그냥 수많은 생각 중에 그냥 그때의 그 생각이 떠올랐을 뿐. 공기가 있으니 숨을 쉰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 순간 든 생각에 나는 자연스러울 수 없었다. 

돌잔치에서 짧게 오갔던 사회자와의 눈빛 대화. 그 시선으로 닦달하던 내용이 무엇인지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양가 부모님께 대한 감사를 전하지 않았다. '효니 돌잔치니까', '우리 세 가족의 이벤트니까'라는 생각에 중요한 걸 놓쳐버린 거다.


 그게 평생의 후회가 된다.

어차피 사람들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도 못할 거다. 무슨 이벤트를 했는지도 잊었을 테고, 돌잡이는 뭘 잡았는지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 거다. 

이미 몇 년이나 지난 일이니 그냥 넘어가면 될 것을, 아무도 모르는 그 일이 너무 후회된다.


사회자가 그렇게나 눈치를 줬는데 내가 다 까버렸다. 미리 말할 내용을 준비했더라면 부족한 부분을 다 채웠을 텐데... 돌잔치 준비에 너무 신경 써서,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말할 내용준비를 소홀하게 했다는 건 핑계조차 되지 않는다. 그때의 선택이 별 거 아닐지 몰라도, 스스로에게 평생의 꼬리표로 달릴 후회의 기억이다.


이 글을 보는 분들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는 기회를 놓치는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누군가에겐 신경조차 안 쓰이는 가벼운 일일지 모른다. 그러기에 더욱 명확히 인지하고 감사를 전하길 바란다. 상대방도 그와 같이 가볍게 넘긴다고 장담할 수는 없으니까.

타인에게 마음을 전하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나와 같은 후회를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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