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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Mar 13. 2023

작은 히어로가 되기 위해

늙지 않은 나이지만 늙어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늘 게을렀지만 게으름이 늘어가고, 늘 몸이 쑤셨지만 몸에 쑤시는 곳이 늘어간다. 어릴 적엔 몸에 좋다고 챙겨줘도 먹지 않던 것들을 이젠 지갑을 털어가며 스스로 찾아 먹는다. 이러다가 노인정에 조기입학 하는 건 아닌지.

단순히 나이를 먹어감에 따른 걱정이 아니다. 내 몸을 생각함에 있어서 가족에 대한 영향이 더 크다. 가장 건강해야 하는 게 가장이니까. 가장 나약한 가장은 가장 강한 가장을 꿈꾼다.


막 스무 살이 됐을 무렵 나는 어그레시브 인라인을 즐겼다. 기물이나 난간을 뛰고 미끄러지며 타는 묘기용 인라인 스케이트인데, 익스트림스포츠답게 매일 상처가 늘어갔다. 점프로 온몸에 체중을 실어 뾰족한 모서리에 정강이를 처박은 것도 수십 번. 퍼렇게 멍들고 부어오른 다리 위로 또 찍어내리고, 다시 그 위로 찍어내리고... 용케 다리가 부러지지는 않았다. 

나중에는 무릎에 대미지가 쌓여 아찔한 통증에 구부리지도 못하며 한동안을 고생했다.


젊었을 땐 좋아하는 거에 그렇게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그때는 책임질 게 없었으니까. 아파도 내가 아프고, 누구 탓도 아닌 내 탓이니까.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내가 고생해서 내가 아파도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움직여야 가정이 돌아가기에 몸 구석구석 기름칠을 한다. 


분하거나 억울하진 않다. 성격 탓인가? 그냥 늘어난 책임감에 혼자 안절부절못하는 거지,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게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내 멋대로 할 수 있는 일인데, 나 자신은 내 멋대로 가족을 생각하는 쪽을 선택한 거다.


비타민도 챙기고, 유산균도 챙기고, 알이 커서 삼키기 부담스러운 오메가 3도 챙기고, 부족한 단백질도 채워주고, 무슨무슨 것들을 쥐어 짜냈다는 즙도 마시고...

왜 어른들이 "너도 나이 들면 알 거다."라는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된다. 단순히 몸이 노화하고 아픈 걸 떠나서 책임져야 할 게 늘어남을 버텨낼 힘이 필요하다. 곁에서 이런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 공감이 아닌 이해. 그저 '그렇구나'하는 정도로 나의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 

열심히 운동하고 몸 만들어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늦바람이 아니라, 토니 스타크의 아이언맨 슈트처럼 작은 히어로가 되기 위한 준비일 뿐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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