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있으면 피해라.
조금 돌아가도 꽃길 위만 걸어가
나는 극성적이지 않은 극성아빠다.
키즈카페에서는 계속 따라다니고, 밖에 나갈때는 꼭 시야에 닿아야한다. 알아서 놀게 냅두고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에 앉아 있을 수가 없다.
과보호 까지는 아니다. 평범한 예방이다. 예방. '고통받지 않고 배울 수 있다면 굳이 아플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꼭 차에 치여봐야 차가 위험한 줄 아는 건 아니니까.
주변인 중에는 방목형 육아스타일이 있다.
"지가 한번 다쳐 보면 다음부터 안그래. 나도 어릴때 다치고 나면 안했어."
음. 개인적으로 절대 이해 못할 타입이다. 말은 이해하지만 마음은 이해 못한다.
예전에 급하게 서두르며 주차된 차를 빼다가 사고를 낸 적이 있다. 차를 조금 앞으로 뺀 후 핸들을 돌려 빠져나와야 하는데, 급한 마음에 시동을 걸자마자 핸들을 끝까지 감아 바로 출발했다. 결국 옆에 있던 기둥에 문짝을 긁어버렸다. 그 후로는 아무리 급해도 차가 중간까지 나오는 걸 확실하게 확인하고 핸들을 돌린다. 그럴때마다 사고를 냈던 경험이 떠오른다. 확실히 직접 겪은 경험은 더 선명하고 깊게 새겨진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고였고 실수였다.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위험을 인식 할 수 있는 범위의 문제. 조금 더 조심하게 된 건 맞지만, 주의사항에 대해 미리 숙지하고 떠올릴 수 있다면 굳이 그런 일을 겪지 않아도 대비했을 거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릴수는 있겠지만 그건 기다리는 부모의 몫. 그 때까지 아이들이 안전할 수 있게 보호해주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나는 과보호가 아닌 적당한 보호를 실행중이다. 호들갑 떨며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 건 과보호지만, 위험할 수 있는 부분을 가려주면서 함께 한다. 아이가 인식하지 못하는 위험의 가능성은 미리 제지하고 그런 위험 가능성이 있다는 걸 꼭 알려는 것이다. 이게 내가 아이에게 경험을 가르치고 배우는 방식이라 생각한다.
가끔은 이게 맞나 싶은 의심을 품기도 한다. 내 울타리가 아이의 세상을 한정시키는 건 아닌지. 정말 아이를 위한 게 맞는지. 단순히 내 마음의 평안을 위한 자기만족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흔들릴때도 있다. 그럴때면 차라리 남보듯 신경 안쓰고 참아야 하나 싶어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부모인 걸. 남처럼 대할 수 없으니 내 방식을 믿는 수 밖에. 대신에 아이들에게 올바른 영향을 주고있는지 늘 살피고 검토한다. 내 욕심에 아이들이 휘둘리지 않게.
사실 이 방법이 좋다고, 옳다고 추천하기는 어렵다. 나도 명확한 답은 모른다. 훗날 아이들이 다 자라고나면 어떤 모습인지, 어릴 땐 어떤 기분이었는지, 직접 보여주고 말해줄 때 내 방식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렵다. 사람을 키운다는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