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그렇게까지 닮아야 속이 후련했냐?!
"나는 나중에 나 같은 애 나올까 봐서 애 낳기 싫어."
내 배로 낳을 것도 아니면서, 진작부터 나는 이런 생각을 품고 살았다.
우리 부모님은 아직도 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어릴 때부터 뭐 걱정되게 사고 치거나 그러지 않고 컸다."라고. 대충 말썽 없이 나름 순하게 자라왔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 속은 오직 나만 알고 있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마음을 먹은 지. 그 시커먼 속내를 모두 알고 있기에 나 같은 아이를 키우기는 힘들 것 같았다. 사실, 그 시절 흔히들 겪고 넘기는 사춘기 때의 반항심 같은 건데, 그 부글부글 끓는 속에 대해서 디테일하게 아니까 거부감이 들었다. 정말 신묘한 예언자가 파멸의 미래를 예지 하고서 그 방향을 피하려는 것처럼.
그런데 결국엔 내 도플갱어가 나타났다. 그것도 둘이나. 어쩜 못난 것만 빼다 박았는지.
어린 시절 아빠한테 혼날 때 자주 듣던 말이 있다.
"꼭 안 좋은 것만 닮아가지고."
어릴 때 그 말이 그렇게나 듣기 싫고 분노를 끌어올렸다.
'애초에 아빠가 그러지 않았으면 그런 건 안 닮았을 텐데.'
진짜 억울했다. 너무 억울했고 엄청 억울했다.
차라리 그냥 잘못했다고 혼내면 받아들일 법도 한데, 내가 혼나는 이유가 다 아빠가 못난 탓에 내가 그걸 물려받아서 혼나게 되는 것에 불만이 쌓였다.
그런데 그건 아빠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분노 버튼이다. 내가 아빠가 되어보니 알겠더라.
어느 시점, 애들이 까불거나, 고집을 피우거나, 심통을 낼 때, 아이들이라면 다들 그러는 행동에서 내 모습을 보게 된다. 다른 아이가 똑같이 떼를 써도 미묘하게 다르다. 그 애는 그냥 떼를 쓰는 거고, 내 아이들은 내가 떼를 쓰는 부분을 그대로 행동하고 있다. 이게 참, 직접 겪어보면 딱 무슨 말인지 알 텐데.
그럴 때마다 '진짜 내 자식이 맞는구나' 싶으면서도, '이런 쓰잘데기 없는 것까지 닮고 나왔네' 싶다. 그럴 때면 속으로 할아버지 탓이라고 떠넘긴다. 애초에 할아버지가 그런 뾰족한 가시가 있었기에 내가 물려받고 그게 아이들한테까지 이어진 거다. 몰라. 진짜 내 탓 아님.
그래도 다행인 점은, 그렇게 닮은 부분으로 아이들을 혼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그 억울함을 겪어봤기에 아이들에게 그 분노의 대를 이어 줄 생각은 없다. 대신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구나 하고 인정을 한다. 그러면 좀 더 이성적으로 상황을 풀어가고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다. 상황이 어쨌건 간에 경험이 배움이다.
이렇게 노력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감정이 이성을 초월하는 때가 간혹 있다. 아무리 좋게 말해도 듣지 않을 때면 나도 모르게 큰소리가 나온다. 스스로가 소리쳤다는 사실에 깜짝 놀랄 정도로 툭하고 튀어나오는 부분이다. 그러면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며 감정을 다시 누른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게 다 할아버지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