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못자는 뜨거운 남자
날 닮아 몸이 찬 효니는 이불을 잘 챙겨 덮는다. 잘 때도 꽁꽁 싸매고 잠들지만, 자면서도 추우면 스스로 이불을 끌어 덮는다. 그래서 어느 정도 추운 것 만으로는 감기 걱정이 없다. 가습기만 틀어주면 건조해서 목이 켁켁 거릴 일도 없다. 진짜, 장녀라 부모걱정은 덜 시키려나 보다.
반대로 아내분을 닮아 몸에 열이 많은 혀기는 감기에 잘 걸린다. 뜨끈뜨끈해서 감기엔 안 걸릴 것 같은데, 뜨끈뜨끈함 때문에 이불을 덮지 않아 툭하면 켁켁거린다. 안 그래도 자면서 굴러다니느라 이불을 다 차버리는데 결코 다시 끌어와 덮는 법이 없다. 보일러를 올리거나 옷을 두껍게 입히면, 잠들 때부터 덮다고 잠을 못 잔다. 잠과 감기 사이의 타협점. 그런 거 없다. 그냥 적당한 따수움 속에서 기도메타를 타는 수밖에.
새벽에 잠깐 깰때면 어기적 거리며 애들 침대를 확인한다. 효니는 잘잔다. 가끔 보일러가 확 도는 타이밍만 아니면 김밥처럼 이불에 돌돌 말려있다. 하지만 혀기는 어김없이 덮는 이불 위에 누워있다.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운데도 세상모르고 잘잔다. 증말 속터지는 미스터리다.
아침이 되면 곧 숨 넘어갈 사람처럼 콜록이는 소리가 들린다. 밤새 집안 추위는 혼자 다 들이마셨나 보다. 좀 더 자고 싶은데 시끄러워서 잘 수가 없다. 매일 목에 손수건을 묶어주고 자는데도 참 약해빠졌다.
감기에 걸리면 컨디션이 가라앉을 법도 한데 그런 거 없다. 목을 긁는 날카로운 쇳소리로 멘트가 끊기질 않는다. 목이 따가워서라도 조용할만한데 제지시키기 전까지는 말을 계속한다. 그마저도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곧바로 입을 뗀다. 진짜 왜 이러는 걸까? 그래. 맘대로 해라. 지도 죽겠다 싶으면 조용하겠지.
조금 있으니 코도 훌쩍인다. 숨쉬기 불편할 텐데도 여전히 말하는 중이다. 코가 흥건하게 들어차는 소리에 코 풀 휴지 한 장 가져오라면 또 말은 잘 듣는다. 본인도 내심 불편했던 모양이다. 코가 떨어질 정도로 한바탕 풀었는데, 조금 지나니 또다시 유혹적인 코맹맹이 소리를 낸다. 아니, 그러니까 말하지 좀 말고 가만히 앉아서 쉬라고!
전에는 혀기도 힘들겠다 싶었는데, 이젠 그러려니 한다. 해탈이다.
최대한 빠르게 준비를 해서 소아과를 간다. 그나마 동네에 하나 있던 소아과가 문을 닫은 탓에 옆동네까지 차를 타고 가야 한다.
평소 대기가 많은 병원이라 문 여는 시간에 맞춰서 도착했는데 대기순번 63번이란다. 이게 대체 무슨...? 오픈시간 고작 10분 지났는데 도대체... 출산율이 줄어들면서 소아과 전공지원자가 점점 줄어든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렇게 몸소 체감하게 될 줄이야. 근처에 그나마 있던 소아과들도 하나씩 줄어들다 보니 사방에서 모여든 환자로 대기인원이 말도 못 한다. 세상에 세상에 소아과도 오픈런을 해야 한단 말인가?
결국 2시간 반의 영겁과 같은 대기시간을 거쳐, 찰나와 같은 진료를 마치고 나왔다. 기다림이 허무할 정도라서 기다린 게 억울할 정도다. 매번 이런 식이다. 시간이 필요 이상으로 비효율 적이다. MBTI - J성향의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비효율이다.
그럼에도 어쩌겠는가. 내가 아빠인걸. 내 아이가 아픈 걸. 아니, 이 와중에도 쉬지 않고 떠드는 걸 보면 정말 아픈 건가 의심스럽긴 한데... 어쨌건 이런 비효율에 희생하는 것 또한 부모의 몫인 듯하다.
제발 이불 좀 덮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