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형 아빠/남편의 자세
눈치껏 알아서 잘하자.
위이이이잉- 드라이기로 아이들 머리를 말린다. 헤어전공자의 전문성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아내분은 아이들을 씻기고 나는 씻고나온 아이들에게 로션을 바르고 내복을 입히고 머리를 말린다. 나이스한 팀워크!
이렇게 딱 나와 아내분의 역할이 나뉜다.
서로 약속을 하고 선을 그은 건 아닌데, 눈치껏 지내오며 자연스럽게 할 일이 정해졌다. 개인의 영역이라기 보단 우리 집의 루틴이다.
처음에는 둘 다 결혼도 육아도 처음이기에 모든 게 서툴렀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라서 난감했고 작은 아기를 손대기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부서질 것 같은 꼬물이를 안고 씻기기는 나도 겁이 났는데, 내향적인 아내분은 오죽했을까. 겁을 먹은 아내분을 대신해 내가 나서야 했다.
다행히 방법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검색어 한방이면 유튜브로 다 배울 수 있으니까. 갓난아이 목욕시키는 법. 요리하는 법. 필요이상으로 많은 정보들이 날 육아이론 마스터로 만들려 한다. 이제 필요한 건 용기와 실행력뿐!
나중에는 해주고 싶어도 못한다는 마음으로 아내분을 대신했다. 두근대는 심장을 숨기고 안정적인 척 아이를 씻겼다. 음식이 서툰 아내분에게 돌솥치즈밥이나 라자냐, 파스타 같은 것들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맛은 뭐... 맛있으면 내 탓. 맛없으면 유튜브 탓.
시작은 그랬으나 나중에는 아내분이 하기 시작했다. 내가 없다고 안 할 수도 없으니 자연스럽게 먼저 손이 닿는 사람이 하는 방식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또다시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아이들 케어는 아내분 몫, 체력적으로 아이들과 놀아주는 건 내 몫이 됐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밤이 되면 각자 한 명씩 붙잡아 양치를 시켜준다. 지금은 각자 8살 6살이 되었는데 매일 한결같이 하는 일이다. 효니와 혀기의 담당은 따로 없고 최대한 하루씩 번갈아가며 양치해 준다. 나 몰래 칫솔을 들고 엄마한테 가는 녀석은 꼭 내가 해준다. 둘 다 엄마랑 하고 싶어 하는데 그 모습이 괘씸해서 내가 꼭 양치를 시킨다. 소소한 화풀이다.
비슷하게 양치를 마치고 둘 다 퉤퉤를 하러 가면 아내분이 따라 들어간다. 그럼 나는 애들 옷을 꺼내 들고 대기상태다. 갑자기 배가 꾸루룩 아프더라도 일단 참고 기다린다. 속으로 '제발 빨리!'를 외치며 기다릴 때도 있다.
가끔씩 내가 애들을 씻길 때도 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내분이 씻기는 것과 비교해 세배정도 시간 차이가 난다. 효율이 심하게 떨어진다. 역으로 아내분이 제대로 씻겨주는 건지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그냥 능숙한 거라고 생각하고 넘어간다. 그렇게 믿어야지 뭐... 별 수 있나.
녀석들이 나오면 바로 케어해줘야 한다. 알아서 하게 두면 옷도 안 입고 놀고 있다. 속 터지니까 그냥 해주자. 내버려 뒀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그게 더 골치다.
온몸에 로션을 바르고, 내복을 입히고, 머리를 말려준다. 드라이기를 사용할 땐 헤어전공자의 자부심으로 말린다. 이게 숙련자의 저력이다!
요리도 이제 아내분이 능숙하게 해낸다. 손도 빨라져서, 내가 유튜브에서 본 특별한 요리를 시도하지 않으면 아내분이 전담한다. 대신 설거지는... 그것도 아내분이 한다. 그리고 나도 한다. 반반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먼저 먹은 사람이 손이 남으면 대충 눈치껏 한다. 그래서인지 애들도 먹은 그릇을 치우는 일에 어려움 없이 동참한다. 효니는 반찬정리 같은 걸 도와주는데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왕이면 빨리 커서 요리랑 설거지랑 다 해주면 더 좋겠다. 제발 꾸준히 효녀여라. 제발!
이게 루틴이다. 서로에게 맡기지 않고 적당한 줄타기로 각자의 역할을 함께한다. 할 수 있는 건 하고, 더 잘하는 쪽이 잘하는 걸 맡는다. 이게 가정의 화목, 내 존재의 안전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나는 특별히 좋은 남편 좋은 아빠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냥 뭐... 혼나기 싫으면 해야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