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는 아빠가 부리고 칭찬은 아내분이 듣는다.
백날 잘해줘 봤자 소용없다. 먹여주고 씻겨주고 놀아주고 재워줘도 결국 아이들의 베스트는 아내분. 이걸 가지고 분하고 억울하다고 하긴 어렵지만,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괘씸한 녀석들...
나랑도 잘 놀고 부르면 후다다닥 잘도 나타나고 그러는데 하나씩 티가 나는 포인트가 있다. 양치할 때마다 엄마랑 하겠다고 하거나, 자리에 앉을 때 엄마 옆에 앉는다고 하거나, 아빠랑 잘 거라고 말하고서는 엄마한테 몰래 자기랑 같이 자자고 포섭시도를 한다거나, 이것 저것 죄다 엄마랑, 엄마랑, 엄마랑...
일단 녀석들에게 물어보면 아빠를 좋아한단다. 그리고 무섭기도 하고.
유연하게 보듬아주는 아내분과 달리 아닌 건 아니라고 훈육하는 내가 무서운가 보다. 그렇게 무서우면 말을 잘 들어야 할 텐데 금세 또 난리를 친다. 차라리 아빠가 그냥 싫은 거라고 해. 이것들아...
그냥 아빠보다 엄마가 좋은데 직접 말하기 뭐 하니까 핑계를 하나 끼워 넣은 것 같다. 아이들이 아내분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길기 때문에 이해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질 수 없는 간극이라 생각한다. 영특하게 줄을 잘 섰다.
딱 좋은 포지션이라 생각한다. 극악무도한 아빠와 자애로운 아내분. 역할을 바꾸고 싶어도 내가 좀 더 예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말 안 듣고 뛰어다니는 것만 봐도 속에서 욱하기 때문에 역할 고정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둘 다 천사이거나 악당이면 안된다. 아이들의 기준에는 아직 울타리가 제대로 쳐있지 않기 대문에 통제가 안된다. 통제를 벗어나는 게 아니라 통제의 기준접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악역을 자처한다.
아이들을 혼낼 때는 절대 서로 공조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화를 내면 한 사람은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 아내분은 안전구역이다. 아빠에게 혼나고 온 녀석들을 토닥여 줄 수 있는 사람. 괜찮아 괜찮아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안 괜찮으니까. 잘못을 했으니까 혼나는 건 당연하다. 그저 속상한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만 쉬어가는 자리다. 대화로 정한 것도 아닌데 아내분과 팀워크가 잘 맞는다.
결국 아무리 아이들과 자리를 잡아도 아이들 속에는 아빠가 조금 더 무서운 모양이다. 그래서 아이들과 좀 더 함께하려 한다. 아이들이 날 싫어한다고 삐지고 멀어지는 게 아니라, 무섭게 군 미안한 마음을 담아 사랑으로 채워주려 한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들도 혼나고 나서 감정이 추스러질 때면 금방 다가와 함께 논다. 그 모습이 더 미안하고 짠할 때도 있다.
아마 평생을 두 번째 자리에 있어야 할 것 같다. 뭐 별 수 있나. 그렇다고 안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두 번째라도 되는 걸 다행으로 삼아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스친다.
딱 이 정도에서 딱 이렇게 사랑 주고 사랑받고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