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극N의 육아

아무리 잘해줘도 아빠는 2인자

재주는 아빠가 부리고 칭찬은 아내분이 듣는다.

by 유가

백날 잘해줘 봤자 소용없다. 먹여주고 씻겨주고 놀아주고 재워줘도 결국 아이들의 베스트는 아내분. 이걸 가지고 분하고 억울하다고 하긴 어렵지만,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괘씸한 녀석들...


나랑도 잘 놀고 부르면 후다다닥 잘도 나타나고 그러는데 하나씩 티가 나는 포인트가 있다. 양치할 때마다 엄마랑 하겠다고 하거나, 자리에 앉을 때 엄마 옆에 앉는다고 하거나, 아빠랑 잘 거라고 말하고서는 엄마한테 몰래 자기랑 같이 자자고 포섭시도를 한다거나, 이것 저것 죄다 엄마랑, 엄마랑, 엄마랑...


일단 녀석들에게 물어보면 아빠를 좋아한단다. 그리고 무섭기도 하고.

유연하게 보듬아주는 아내분과 달리 아닌 건 아니라고 훈육하는 내가 무서운가 보다. 그렇게 무서우면 말을 잘 들어야 할 텐데 금세 또 난리를 친다. 차라리 아빠가 그냥 싫은 거라고 해. 이것들아...


그냥 아빠보다 엄마가 좋은데 직접 말하기 뭐 하니까 핑계를 하나 끼워 넣은 것 같다. 아이들이 아내분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길기 때문에 이해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질 수 없는 간극이라 생각한다. 영특하게 줄을 잘 섰다.


딱 좋은 포지션이라 생각한다. 극악무도한 아빠와 자애로운 아내분. 역할을 바꾸고 싶어도 내가 좀 더 예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말 안 듣고 뛰어다니는 것만 봐도 속에서 욱하기 때문에 역할 고정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둘 다 천사이거나 악당이면 안된다. 아이들의 기준에는 아직 울타리가 제대로 쳐있지 않기 대문에 통제가 안된다. 통제를 벗어나는 게 아니라 통제의 기준접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악역을 자처한다.


아이들을 혼낼 때는 절대 서로 공조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화를 내면 한 사람은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 아내분은 안전구역이다. 아빠에게 혼나고 온 녀석들을 토닥여 줄 수 있는 사람. 괜찮아 괜찮아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안 괜찮으니까. 잘못을 했으니까 혼나는 건 당연하다. 그저 속상한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만 쉬어가는 자리다. 대화로 정한 것도 아닌데 아내분과 팀워크가 잘 맞는다.


결국 아무리 아이들과 자리를 잡아도 아이들 속에는 아빠가 조금 더 무서운 모양이다. 그래서 아이들과 좀 더 함께하려 한다. 아이들이 날 싫어한다고 삐지고 멀어지는 게 아니라, 무섭게 군 미안한 마음을 담아 사랑으로 채워주려 한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들도 혼나고 나서 감정이 추스러질 때면 금방 다가와 함께 논다. 그 모습이 더 미안하고 짠할 때도 있다.


아마 평생을 두 번째 자리에 있어야 할 것 같다. 뭐 별 수 있나. 그렇다고 안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두 번째라도 되는 걸 다행으로 삼아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스친다.

딱 이 정도에서 딱 이렇게 사랑 주고 사랑받고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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