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극N의 육아

정말 이 짐이 다 필요해?

무슨 도라에몽도 아니고...

by 유가

한 번씩 가족들과 본가에 간다. 차로 1시간 조금 못 되는 거리에 하룻밤 자고 오는데 옷가방이 묵직하다. 밤에 잘 때 입을 여벌 한 벌씩만 챙기면 될 것 같은데 아내분은 꼭 두벌씩 챙긴다. "혹시 모르니까."라는 게 이유다. 효니 혀기가 어렸을 때는 툭하면 옷을 더럽히기 일쑤라 그러려니 했는데, 아직까지 여전한 대비성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나와 아내분은 둘 다 J성향을 타고났는데 방향성이 조금 다르다. 나는 상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효율적인 계획을 짜는 반면, 아내분은 필요 이상의 대비를 한다. 물론 '필요이상'이라는 건 내 기준이긴 하지만, 매번 챙겨간 옷들을 꺼내지도 않고 그대로 가져오는 건 내 추리를 뒷받침해준다.


처음 몇 번은 어차피 안 쓸 거 왜 무겁게 챙겨가는지 따진 적도 있다. (아, 참고로 따졌다는 건 그냥 넌지시 물어봤다는 의미다. 아내분을 부정하는 건 금기다.) 하지만 매번 돌아오는 대답은 "혹시 모르니까.". 그래. 진짜 모르겠다.

내 짐은 잠옷 한 세트와 차키, 스마트폰. 끝. 필요한 건 아내분이 다 챙겼으니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별거 없다. 폰 충전기와 로션. 그리고 두어 벌의 옷. 맞다. 결국 그냥 옷이 문제다.


가방이 터질 듯 지퍼도 잘 안 잠긴다. 하지만 그걸 보고 별다른 말은 하지 않는다. 옷 좀 더 넣었다고 피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조금 더 챙김으로써 아내분이 안정감을 느끼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짐은 내가 들기 때문에 잠깐은 후회와 고민 비슷한 무언가를 떠올린다. 그래도 충분히 참을 수 있는 정도다.


효니와 혀기도 각자 짐을 챙겨간다.

효니는 생일 때 받은 캐리어에 색연필과 색칠북과 말랑이 모찌 한 뭉탱이.

혀기는 백팩에 이미 색칠을 다 한 그림종이와 도대체 이런 게 왜 집에 있지 싶은 장난감 비스므레한 무언가를 가득 챙긴다.

그런데 가지고 노는 건 한 번도 못 봤다. 대체 왜 꾸역꾸역 챙겨가는 건데? 효율을 중시하는 나로서는 머리만 아프다.

다들 미스터리다. 이 집에서 멀쩡한 건 나뿐인가? 그럼 내가 이해해야겠지...


이게 조화다. 가정의 평화고, 생존을 위한 남편의 자세다. 나만 참으면 평화롭다. 사실 참을 것도 아니다. 그냥 다름을 이해하는 거. 억지로 맞출 필요 없는 사소한 차이는 굳이 맞추려다가 불화가 시작된다. 그 차이를 현명하게 이해한다.

누군가에겐 우스운 헛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이런 작은 포인트가 다른 상황에서 큰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 그게 여지껏 날 안 쫓겨나고 함께 살게 해 주는 비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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