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니는 핑크를 좋아한다. 분홍이 아니다. 꼭 핑크여야 한다. 대체 어디서 뭘 본 건지 여자나 공주나 그런 사람은 이쁜 핑크를 좋아하는 거란다. 개똥 같은 논리지만 반박할 수가 없다.
나는 애들이 편견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의 주관을 갖고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고정관념에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고 자유롭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 그래서 '핑크는 여자색'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있다. (사실 핑크야말로 진정한 남자의 색이다!)
몇 번이나 핑크는 남자도 할 수 있고, 치마도 입는다면 남자도 입을 수 있는 옷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눈빛을 보면 의아한 눈치다. 아직 폭넓은 개인의 가치관을 이해시키기엔 이른가 보다.
요즘에는 핑크도 아니고 연분홍, 연보라 같은 연한 계열의 색이 좋다고 한다. 연핑크도 결국 핑크니까 여전히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면 전혀 다르단다. 핑크는 어렸을 때 애기들이나 좋아하는 거고, 자기는 이제 은은하게 연한 색들을 좋아한다고 한다. 진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자기는 이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제 초2로 올라가는 입에서 나오는 말이기에 한숨만 나온다.
내 딸이지만 역시 미스터리다. 뭘 보고 희한한 기준점이 생긴 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도 나름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고정관념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그러한 정보를 선택해서 취하는 거라고 말이다. 무조건적으로 해당 선택을 고집하거나 강요하지 않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혀기는 녹색을 좋아한다. 어릴 때도 색칠공부를 하면 초록색 하나면 충분했다. 벌레도, 자동차도, 로복도, 캐릭터도, 모두 초록생덩어리로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까지 녹색에 집착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기 때부터 벌레를 좋아했는데(그러면서 실제 벌레는 엄청 무서워한다) 대부분의 곤충들이 녹색을 품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초록색을 좋아하게 된 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혀기한테 왜 녹색을 좋아하냐고 직접 물어보면 어몽어스도 초록색이고 그린(캐릭터)도 초록색이고 해서 좋단다. 이상하다. 혀기는 분명 그런 캐릭터를 알기 전부터 초록색을 좋아했다. 결국 캐릭터 때문이 아니라, 녹색이라서 캐릭터를 좋아하는 건데, 아무리 다시 설명해 줘도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이 부분은 효니랑 다른 의미로 걱정이다. 혀기는 자기 고집이 있다. 고집이라기 보단 자기 기준이 명확하다. 지금은 어리니까 "고집 있네~"하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좀 더 크면 타인과 충돌의 발단이 될까 봐 걱정이다.
효니처럼 주변의 흐름을 잘 타면 대인관계는 좋을 것이다. 실제로 친구들에게 인기가 좋고, 학교와 태권도에서도 인기투표로 선물도 받아왔었다. 성격이 부드러워 주변에 거슬리지 않게 잘 지내는 덕분인가 보다.
혀기도 애교가 많아 친구들이 좋아하는데 가끔씩 마음이 안 맞을 때가 있는 모양이다. 주변 친구들도 어리기 때문에 혀기만 탓할 수는 없다. 당연히 서로 부딪히는 거겠지. 충분히 이해는 한다만, 어쨌건 효니 때처럼 매끄럽진 않다.
좋아하는 성향만 봐도 여러 가지를 엿볼 수 있다. 코난이 작은 단서를 시작으로 큰 사건을 해결해 나가듯, 아이들을 알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그냥 흘려 넘기지 않는 관심만 있다면 무엇이든 단서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극 N성향으로 인해 별것도 아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좋아하는 색 하나 물어본 걸 시작으로 아이의 성격파악과 대인관계를 걱정하고 도와줄 방향성까지...
근데 이 녀석들은 아빠가 이렇게까지 자기들을 신경쓰는지 알랑가 모르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