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것도 정도껏 해라.
어디까지 참아줘야 하니?
평화와 화합을 추구하는 선의의 옹호자(INFJ)로써 나는 사과를 잘한다. 고개를 숙이고 들어감으로써 내 이미지가 실추되고 손해를 보더라도 내가 저지를 잘못에 대해선 숨김없이 사과한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득실을 따지는 것 자체가 굉장히 염치없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잘못을 하지 말았어야지. 일부로 한 게 아니라고? 그래도 결과적으로 잘못을 했으니까 사과를 하면 되고. 아주 근본적이고 단순한 논리가 내 정의의 기준점이다.
그런데 상황이 애매모호할 때가 있다. 내 잘못이 아닌데, 상대가 멋대로 해석하거나 전체적 흐름이 묘하게 내 잘못처럼 흘러갈 때. 이런 찜찜한 상황에서는 미리 눈치를 채고 슬쩍 나 자신을 감춰버린다. 솜사탕을 물에 녹여내듯 스르르르.
문제의 중심에서 한발 빼고 보면 사실 별 거 아닌 일인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감정이 격해질수록 주변을 못 보는 경우가 많다. 불화의 냄새를 맡은 나는 주변을 보기 위해 물러나는 거다. 결코 내 탓이 아닌 척을 위해 도망치는 게 아니다.
나는 잘못한 적이 없는데 억울하게 내 잘못이 됐다면? 사과고 뭐고 당연히 없다. 나는 결백하므로 논리로 깨부순다. 상대가 말이 안 통하는 답정너라면? 얄짤없다. 그냥 손절이다.(INJF가 연락이 없는 이유...)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상황으로, 일부러 한 건 아니지만 내가 발단의 주체가 되었다면? 내심 억울하기도 하지만 사과한다. 나 하나의 희생(?)으로 평화가 찾아온다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 물론 속으로는 쌍욕을 퍼붓고 있을 수 있다.(몹시 높은 확률)
내가 억울 한 건 참을 수 있다. 단순하게 날 몰아세운다면 내가 희생하면 된다. 하지만 거짓을 뒤집어 씌워서 날 죄인으로 만드는 건 참을 수 없다. 정의의 이름으로 절대 용서치 못한다.
나는 '참기'가 기본 옵션으로 장착되어 있기 때문에 타인을 허용하는 범위가 꽤 넓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매번 손절각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 사이에는 지켜야 할 선이 있는데 그 '기본'을 지키지 않는 경우 참을 수가 없다. 아니, 참을 생각조차 안 한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는 게 사람의 도리다. 최소한 그 후에 사과라도 하던가.
선의의 옹호자는 선의를 옹호하는 사람이지 선의로 변화시키는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지옥조차 천국으로 만들려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련다. 나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벌을 받기 위해 지옥은 그대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왕이면 좀 더 고통스럽게 업그레이드 됐으면 싶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인프제의 내면 속 어둠이다.
착하게 살자. 잘못은 저지르지 말고, 어쩔 수 없는 잘못이라면 사과라도 하자.
좀 평화롭게들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