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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Feb 07. 2023

소음? 브금?

적막은 싫어

우리 집 저녁식사는 분위기 있는 재즈음악과 함께한다. 유튜브에서 적당히 분위기 있는 썸네일을 찾아 누르고 감미롭고 리드미컬한 선율에 맞춰 삼겹살을 구워 먹고 된장국을 떠먹고 연근과 우엉을 씹는다. 혹자는 주접부린다고 하더라. 흥.


사실 음악 종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식사하기에 너무 자극적이고 텐션 높은 곡만 아니면 아무거나 틀어도 좋다.(사실 그런 음악도 상관없다.) 음악을 트는 이유는 분위기를 잡기 위함이 아니라, 적막함을 견딜 수 없어서다. 항상 네 식구가 함께 식사를 하기에 조용할 리 없지만, 멘트 사이사이에 끼인 공허가 몹시 불편하다. 


다 함께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TV부터 켠다. 뭘 보려는 게 아니라 공간을 소리로 채우기 위함이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아내분의 일침이 날아든다.

"TV 볼 사람도 없는데 왜 또 켰어!"

무, 무시하자... 그냥 못 들은 척하고 도망간다. 눈을 피해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면 TV가 꺼져있다. 으으...

빠르게 짐정리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다시 TV를 켠다. 채널을 돌려도 역시 볼 게 없다. 그래도 그냥 채널만 슬슬 슬 돌려본다. 이러고 앉아있으면 합법적으로 TV를 켜고 있을 수 있다. '보고 있다'라는 명분이 생겼으니까.


아내분은 나와 반대다. 조용하면 조용하다고 좋단다. 저녁에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들이 TV를 안 보고 있으면 아내분도 안 보고 있다. 그냥 저마다 할 일을 하고 있다.  나는 도통 이해 할 수 없다.

그 뭔가 그런 거 있지 않는가. 뭐랄까. 애매하게 불편하고, 애매하게 초조하고. 뭔가 그냥 가만히 있기에 어색해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 아내분은 그런 게 없다. 들을 필요(혹은 목표)가 없는데 나오는 소리를 소음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는 적막이 듣기 싫은데, 아내분은 소음을 듣기 싫어한다. 나도 시끄러운 건 싫다. 그래도 백색소음은 마음을 안정시켜 주지 않나? 아내분이 내 안정제를 가로막는다. 적막으로 불안하게 만들지, 눈치로 불안하게 만들지, 하나만 골라서 해주면 좋겠는데,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날 불안하게 한다.


어쨌건 식사시간만큼은 음악을 듣는다. 내가 적막을 싫어하는 걸 알기에 더 이상 핀잔을 주진 않는다. 그 자비로움에 보답하고자 의미 없는 TV는 켜지 않는다. 무언의 기브&테이크를 통해 균형을 맞춰가고 있다. 살아남으려면 알아서 기어야지. 뭐 그런 거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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