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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Feb 08. 2023

세상에 날 위한 베개는 없다.

나는 잘 때 온몸에 베개를 두르고 잔다. 머리에 하나, 다리에 하나, 껴안고 잘 거 하나. 아내분과 함께 살기 전에는 등뒤에서 날 덮어줄 베개까지 두고 잤다.

이렇게 베개 없이 못 사는 나지만, 여러 종류의 베개 중에 내 마음에 드는 베개를 찾을 수 없다. 

어릴 때는 베개 때문에 불편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결혼하고 나서부터 점점 베개에 예민해지고 계속 구매와 실패를 반복하는 중이다. 아, 방금 전 문장에서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면 오해다. 아내분 때문에 그런 거 아니다... 진짜...!

아내분도 언젠가 비슷한 말을 했다. 나처럼 예민하진 않지만 결혼 후 베개가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뭐가 문제인 거지? 희한하게 공통점이 있는 듯 하지만 그건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우리는 잘살고 있다. 진짜로...


목침? 딱딱해서 어떻게 베지?

콩베개? 시골에 가면 있는 시끄럽고 무거운 옛날 베개. 

경추베개? 옆으로 자니까 딱히 좋은지 모르겠음.

메모리폼 베개? 너무 쑥 꺼짐.

라텍스 베개? 이건 너무 튕겨서 출렁임.

솜베개? 좀만 쓰면 가라앉아서 안 베는 것과 마찬가지.

거위털베개? 뭐라 특정하긴 어려운데 이것도 쓸수록 점점 불편해짐.


그렇게 쌓여버린 베개가 이불장에 9개다. (목침, 콩베개는 없음.)


베개가 수면의 질을 좌우한다는데, 내 배게들은 날 암살할 작정인가 보다. 자려고 누우면 편한 자세를 잡기까지 수십 번을 뒤척여야 한다. 한참을 비비적거리다 보면 아내분이 눈치를 준다. 내가 생각해도 어지간히 깨작거린다. 아직 팔이 불편하지만 참고 잔다. 잔다. 잔다.. 잔다... 으으! 불편한 게 신경 쓰여서 잠이 안 온다. 좀 더 버티고 있자니 아내분의 숨소리가 커진다. 기회다! 선잠이 든 아내분을 자극하지 않으며 움찔움찔 자세를 바꾼다. 그래도 여전히 만족스러움 안락함은 못 참는다.


베개가 적절한 높이로 받쳐주질 못한다. 옆으로 누워서 자는 나는, 베개가 너무 높으면 목에 힘이 많이 들어가서 아프고, 반대로 너무 낮으면 어깨가 눌려 저려온다. 딱 맞는 베개를 베면 되지 않냐고 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베개가 9개까지 증식하는 일은 없었을 거다. 

처음에는 괜찮던 것도 조금 지나면 솜에 숨이 죽으면서 불편해진다. 낮아질 걸 감안해서 높은 걸 사도 모세의 기적처럼 바닥까지 줄어들었다. 내 머리가 너무 무거운 건가...? 

며칠 연속으로 베개가 불편하게 느껴지면 어김없이 담이 찾아온다. 참고 써보려고 해도 이렇게 육체가 쿠데타를 일으키면 버틸 수 없다. 참아서 될 문제가 아니다. 담이 나았나 싶으면 또 심해지고 또 심해지고 계속 심해진다. 결국 새로 살 수밖에 없다. 손님은 오지도 않는데 손님용 베개만 쌓여간다.


잘 때 안고 자는 기다란 바디필로우도 3개다. 하나는 따님 때문에 샀다가 불편하다고 방출당한 겨울왕국 베개다. 숨도 죽지 않아 땡땡한 베개를 버릴 수도 없기에 내가 쓰고 있다. 아까워서 쓴다기보다는 개이득이라는 생각으로 받아왔다. 그걸 빼고도 직접 산 건 두 개다. 


각각 쿠션감이 다르다. 

하나는 기댈 때 사용하기 좋은 기다란 등베개다. 솜이 가득 차서 두툼하고 말랑해서 안고 자기 좋은 녀석이었다. 설명이 과거형인 이유는 더 이상 두툼하지 않아서다. 베개와 마찬가지로 안고 자다 보면 바닥에 엎드려 자는 것처럼 갑갑함이 생긴다.

그래서 효니가 준 겨울왕국을 안고 잔다. 근데 이건 너무 빵빵하다. 적당히가 없이 숨을 가득 채워 넣어서 과하게 탄탄하다. 안 고자면 편하게 감싸는 게 아니라 뒤집어지지 않게 버텨야 할 정도다. 안기보단 다리를 올려놓고 자기 좋은 녀석이다.

하나 남은 녀석은 여름에 산 쿨링바디필로우인데 이 녀석은 말랑을 넘어 흐물텅거린다. 등베개의 하위호환인데 길이가 길기 때문에 몸에 돌돌 감고 잔다.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갑자기 이렇게까지 예민해진 이유를 모르겠다. 어릴 때도 분명 베개 솜이 꺼지고 그랬을 텐데, 왜 이제 와서 이렇게 거슬리는 걸까? 신경적인 부분이 아니다. 실제로 몸이 압박을 느끼고 불편한 통증을 호소한다. 달라진 거라고는 아내분과 함께 자는 것뿐인데, 그것도 불편하게 엉켜 자지 않는다. 서로의 공간을 존중해 주며(?) 한침대에서 각자의 공간을 만끽하며 잔다. 괜히 비싼 돈을 들여 큰 침대를 산 게 아니다. 그럼에도 안락한 수면환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 그러고 보니 또 하나 변한 게 있다. 예전보다 조금 더 늙었다는 것... 진짜 이게 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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