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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Feb 13. 2023

찬물/뜨거운물

한겨울 추위에 턱이 덜덜 떨려도 꼭 찬물을 마신다. 간혹 음식점에서 겨울에는 끓인 주전자 물을 내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도 단호하게 찬물을 요구한다. 뜨거운 물이 싫다. 뜨거우니까! 


식사 중에 물도 많이 마신다. 최소 세 컵 이상은 마시는데 밥보다 물배가 차서 음식을 못 먹을 정도다. 밥 한 숟갈 크게 떠먹고 반찬을 이것저것 두세 개씩 욱여넣어 입안 가득 음식을 씹는다. 이때 차가운 물을 한 모금 들이켠다. 꿀꺽. 꿀꺽. 꿀꺽. 생각은 한 모금만 먹으려 했는데 물이 콸콸콸 넘어간다.  이 느낌이 좋다.

식사 중에 마시는 물은 안 좋다고 눈치를 먹으면서도 포기할 수 없다. 답답하게 막힌 속을 차갑게 훑고 지나가며 뻥 뚫어주는 느낌. 물 한 컵을 느낌 있게 들이켜고는 "크으-"소리를 내며 빈컵을 채운다. 

특별히 사람들 만나는 일 아니면 술을 즐기지 않지만, 이때만큼은 식사에 반주를 즐기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이 개운함을 느끼기 위해 하루를 버텼구나. F의 감성이 폭발한다. 식도를 타고 흐르는 시원함을 만끽하며 다시 한 컵 들이킨다. 

도포자락이 바람에 흔들리며 사라락 거리는 대나무숲에 앉아 보름달을 바라보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는 선비라도 된냥, 순간의 여유를 만끽하며 물 한 컵을 넘긴다.

안 되겠다. 냉장고를 열어 술이 아닌 얼음을 꺼내온다. 불타오르는 속을 식히기 위해 더 차갑게. 더 차갑게.


반대로 씻을 땐 무조건 뜨거운 물이다. 미지근도 아니다. 뜨뜻한 물도 아니다. 무조건 김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끓는 물을 퍼붓듯 샤워한다. 처음부터 너무 뜨겁게는 무리지만 점점 온도를 높여 더 이상 온도를 높이지 못할 때까지 올린다. 

뜨거운 물을 뿌리면 오히려 차가움이 느껴진다. 체온과의 온도 차이 때문인가? 피부가 짜르르하고 전기가 오르는 기분이 들며 지친 몸을 깨워준다. 찌뿌둥한 근육을 온찜질한단 생각으로 녹여버린다. 이때만큼은 지옥불에 들어가도 생각보다 편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음... 그래도 이왕이면 천국이 좋겠지?


그렇게 몇 분이 지나면 피부가 빨갛게 변하고 몸속에 열이 돌기 시작한다. 아직 발끝은 냉기를 머금고 있다. 저기까지 피가 돌게 만들려고 욕심내다간 다른 부위들이 수육으로 삶아질 판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몸을 닦아낸다. 살짝 데쳐진 몸을 훑을 때마다 따끄름한 느낌이 든다. 피부에는 몹시 나쁜 습관이지만, 그래도 이 느낌이 좋다. 잠들어있는 피부를 깨워 스트레칭시킨 것처럼, 개운하다. 


몸 안팎에서 원하는 온도가 극단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둘 다 시원함을 느끼게 해 준다. 물리적인 시원함을 떠나, 정신적 피로가 풀리는 힐링이다. 

남의 눈치가 무슨 소용이랴. 남의 잔소리가 무슨 소용이랴.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찬물도 뜨거운 물도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하련다. 뜨거워도 내 살이 뜨겁고, 소화가 안 돼도 내 속이 안된다!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나만의 소소한 힐링. 절대 포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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