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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Feb 10. 2023

이제부터는 스팸을 사먹을 거야!

더이상 런천미트로 타협하지 않겠어

며칠 전, 오랜만에 스팸을 사 먹었다. 한동안 런천미트로 입을 달래 왔는데, 치솟는 물가로 가격차이가 점점 좁혀지면서 "에라이!" 하고는 스팸을 질렀다. 선택은 탁월했다. 한 입에 황홀경에 빠져 왜 그동안 이걸 참았나 싶었다. 비슷한 류의 통조림 햄들에 비해 조금 더 짜고 비쌀 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보드라운 식감부터 신경을 자극하는 나트륨까지! 이런 맛이면 혈압 좀 오르더라도 인정하겠다 싶었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면 가격표를 비교하고, 용량을 비교하고, 작게 쓰인 100g당 가격까지 철저하게 비교해 가며 물건을 산다. 분명 가격으로는 저게 더 싸 보이는데 100g으로 비교하면 이게 더 싸다. 결국 입이 찾는 음식은 탈락하고 지갑이 찾는 음식만 카트에 담긴다.

 

층을 바꾸니 옷이 가득하다. 별로 눈길이 가진 않는다. 좋은 소재. 화려한 색상에 다양한 디자인. 다양한 상품들을 뒤로하고 빠르게 카트를 민다. 

[이월 상품 할인.]

좁은 공간 대충 맞춰 걸린 상품들을 하나씩 검열한다. 쓸만한 게 남았는지 디자인, 질감, 핏, 기장까지 꼼꼼히 살핀다. 

개당 4,000원. 개당 7,900원. 그 와중에도 할인가가 더 낮은 쪽에 눈이 간다. 4,000원 구역에는 딱 봐도 아저씨 같은 옷들만 남았다. 아쉬운 데로 7,900원 상품들을 살피지만 별반 다르지 않다. 애초에 비슷해 보이는데 왜 가격을 나눈 건지 이해가 안 간다.


미리 예상했지만 역시 마음에 드는 옷이 없다. 그나마 아무거나 입어도 상관없는(?) 애들 옷과 내복만 몇 벌 건져온다. 나야 몇 년째 입는 옷을 해질 때까지 입으면 되지만, 애들은 옷이 맞질 않으니 어쩔 수 없다. 길게 입어봐야 한 철인 애들 옷은 역시 싼 게 최고다. 


한층 더 올라오니 가전제품들이 보인다. 빠르게 스킵. 


곧장 계산대로 향하는데 장난감 코너가 가로막는다. 제길. 

상품 구역을 기깔나게도 배치했다. 로켓이 연료통을 떼어내듯, 자동으로 두 녀석이 흩어진다. 이 순간만을 위해 함께하는 녀석들이라 자유로운 아이쇼핑 시간을 선물한다. 하지만 장난감을 선물하는 건 별개다. 어차피 사줘도 한두 번 갖고 놀다 금방 질려버릴게 뻔하다. 그거 말고도 이미 집에 장난감이 한가득이다. 나 어릴 때와 달리 요즘 장난감들은 더 별거 없고 더 쓸데없고 더 비싸다. 합리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내 지갑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이렇게 비교하고 포기하면서 물건을 담아도 계산대에서는 늘 좌절한다. 별로 사지도 않았는데 금액이 어마무시하다. 진짜 무시하고 싶은 순간. 그래도 먹을 건 먹어야 하고 입을 건 입어야 하니까 어쩔 수 없는 만큼을 영리하게 소비했다고 생각한다.


집에 돌아오면 장 봐온 물건들부터 정리한다. 마음을 후들거리게 했던 것들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안정감을 가지고 스마트폰을 연다. 이것저것 SNS를 만지다 보면 틈틈이 광고들이 내 눈에 박힌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손가락이 광고를 누르고, 옵션을 누르고, 주소를 누르고, 결제방법을 누르고, 입금 완료를 누른다.


... 응? 뭐지?


정신을 차리는 건 배송 중 메시지가 뜰 때쯤이다. 직접 물건을 담으며 쇼핑할 때는 동전 하나를 아껴보겠다고 1,600원짜리 두부를 내려놓고 1,400원짜리 담았으면서, 요망한 마케팅상술에 현혹되어 몇 만 원짜리를 덥석 구매한다. 이럴 거였으면 애들이 갖고 싶다는 거 하나라도 사줄걸... 뒤늦은 후회에 미안함이 가득하다.


어차피 티끌 모아서 더 큰 지출을 해버리는데, 이럴 거면 자잘하게 더 만족스러운 것들을 사는 게 차라리 낫겠다 싶다. 둘 다 아낀다면 베스트지만, 궁상맞은 소비보다 행복한 절약을 하고 싶다.

이제는 스팸 앞에서 주저하지 않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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