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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Feb 15. 2023

너 왜 거기 앉아있니...?

내가 이런것까지 해야하나?

내 첫 사회생활은 미용실 스텝이었다. 하루종일 앉지도 못하고 끼니도 밀려가며 일했다. 그렇다고 급여도 많은 것도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미용실 스텝은 힘들고 급여 적기로 소문난 3D직종으로 유명하니까. 알바 최저시급의 절반도 안 되는 급여를 받으면서도 통장에 돈이 쌓여갔다. 그 적은 돈조차 쓸 시간이 없었다. 일하는데 모든 기력을 다 쏟아 휴일엔 집에서 거실로 나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한 달 반 만에 9킬로가 빠졌을 만큼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힘들었던 기억 중에서도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하나 있다.


한 여성 고객이 초등학생 저학년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를 데리고 방문했다. 적당히 커 보이지만 아직 뭘 할 줄 모르는 그런 정도의 아이. 

손님은 디지털 펌 시술을 받기로 했다. 펌시술은 원래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디지털 펌은 좀 더 특별한 요소가 있다. 고정된 기기에 머리를 연결하고 있기 때문에 이동할 수가 없다. 그래서 엄마는 시술석에, 아이는 대기석에 앉아 강제 분단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이는 제법 의젓했다. 혼자 있어도 심심하다 떼쓰지 않고 경박스럽지도 않았다. 뭘 하며 기다렸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행동이 조심스러워 얌전했던 건 기억난다. 

덕분에 편한 마음로 펌 시술을 진행하던 중, 아이가 엄마를 불렀다. 화장실이 가고 싶단다. 화장실 위치를 알려줬으나 찾질 못하고 돌아온다.

당시 매장은 3층으로 이루어져, 각 층 계단 중간에 화장실이 있었는데, 통거울로 된 벽이 슬라이딩으로 움직이는 시크릿도어 구조였다. 아이에게는 호그와트로 가는 9와 3/4 정류장을 찾는 것만큼 어려울만했다.


결국 내가 아이 손을 잡고 올라갔다. 거울 속으로 아이를 밀어 넣고 앞에서 기다렸다. 기다리고. 다시 기다렸다. 음... 왜 안 나오지?

남자가 화장실을 얼마나 빨리 다녀오는지는 인생 선배로써 충분히 알고 있다. 이 정도면 손을 씻고 거울을 보며 자아도취에 빠졌다 돌아와도 충분했다. 


"뭐 해?"


대답이 없다. 호그와트로 떠나버린 건가?


"뭐 해?"

"다 쌌어요."

"응. 나와."


잠시 기다렸지만 여전히 무소식이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빨리 내려가서 디자이너 선생님을 도와드려야 하는데 괜히 초조해졌다. 내가 농땡이 피고 있다고 생각할 거 아냐.


"다 쌌어?"

"네."

"그럼 나와."

"저 못해요."


뭔 소릴 하는지 머리가 따라가지 않는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서 문을 열겠다고 말하고 들어갔다. 그리고 충격적인 모습의 아이와 마주했다.

바지를 발목에 걸치고 변기에 앉아 있는 그 모습...

순간 뇌가 굳어졌다. 뭐지? 뭔 일이지? 뭘 해야 하지? 20대 초반인 내가 받아들이기에 파급력이 너무 컸다.

애를 두고 도망칠 수는 없다. 엄마를 불러오자니 메두사처럼 머리를 고정해 움직일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오직 나뿐... 복잡한 심경으로 홀린 듯 휴지를 뜯었다. 휴지를 말면서 그렇게나 한숨이 나오더라.


혼미한 정신 탓인지, 방향제 덕인지, 다행히 냄새는 안 났다. 하지만 내 눈은? 시각을 차단하지 못하고 고비가 찾아왔다. 초점을 흩트리고 애 먼 곳을 쳐다보니 참을 만했다. 하지만 손끝의 감각은 어쩔 수 없었다. 정확한 느낌보다, 누군가의 뒤처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소름 끼쳤다. 그 와중에 한번 더 닦아주며 완벽한 마무리를 해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 (*함함하다 : 털이 보드랍고 반지르르하다.) 하지만 쟤가 내 새끼는 아니잖아... 성취감보단 패배감이 더 컸다.


아이는 먼저 내려보내고 나는 멘털을 추슬렀다. 아니, 추스르려 했다. 도통 진정되질 않았다. 한숨만 크게 쏟아졌다. 

조금 뒤 내려가니 디자이너 선생님께서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인상을 쓰셨다.


"쟤가 똥사서 그거 직접 닦아주고 왔어요..."


아직도 기억난다. 아차 싶었던 선생님의 표정. '고생했어.'라는 그 한마디의 위로가 더 끔찍하게 들렸다. 마치 장례식장에서 마주친 사람처럼 묵직한 위로였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나에겐 10년이 넘은 지금도 선명한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그 아이는 기억할까? 얼굴은 몰라도, 어릴 적 화장실에서 자신을 구해준 히어로가 있었단 기억만이라도 간직하고 있으면 좋겠다. 나만 이 끔찍함을 기억한다는 게 너무 분하고 억울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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