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dith

by 유미미

나는 어떤 고등학교의 졸업생이고 필요한 서류가 있어 몇 해만에 학교에 온다. 1층 중앙에는 그리 길지 않은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학교 로비에서 흔히 볼 법한 어항, 거울, 트로피나 상패, 계단도 보이지 않고 오직 빨간 손잡이와 검은 바닥의 오래된 에스컬레이터 하나가 내 앞에 있다. 그것은 아주 옛날에 어린 내가 엄마와 다니던 쇼핑센터를 떠올리게 했다.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을까? 에스컬레이터가 운행을 하였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확실치 않고 그건 물론 중요하지 않다. 나는 주저없이 커다랗고 검은 발판을 하나씩 뛰어오른다. 나는 아이처럼 눈과 발이 가까워서, 한 칸 한 칸이 높고 커다랗게 느껴진다. 숨이 찬다. 윗층으로 올라가자 곧바로 교무실이 나왔다. 2학년 때 역사를 가르쳤던 선생이 열린 문 뒤로 보이는데 그는 여전히 나보다 키가 작다. 면도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부족한 수염과 흰 얼굴이 그때와 똑같네, 하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에도 나만 나이를 먹어서 왔군. 그는 반긴다거나 하는 기색없이 무채색으로, 피부색과 비슷하게 흐릿한 여름 와이셔츠를 입은채, 그렇게 엉거주춤 서 있다. 그가 어떻든 나는 꽤나 반가웠는데, 기억이나 꿈에서 만나는 것처럼, 상대방은 그 때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언제나, 영원히. 선생님을 기억해요.

언제나, 영원히.


필요한 서류는 그에게 부탁을 해도 될 것이다. 나는 공손히 무어라 말을 하지만 반응이 영 시원찮다. 그런데 옆에서 어떤 기척이 느껴진다. 고개를 돌리니 내 옆에 또 다른 학생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작고 귀엽지만 어쩐지 얄밉게 생긴 그 여학생은 줄인 교복을 입고 아주 크고 잘생긴 갈색 말을 타고 있다. 미술학원에 같이 다니던, 나와 딱히 친하지 않았던 아이를 닮은 말 위의 그녀는 무척이나 위풍당당해보인다. 헤어스타일이 매우 특이한데, 부처상처럼 단단히 붙은 짧은 곱슬에 윤곽은 마치 검은 수영모 같다.


야무지고 건방진 저 얼굴. 역사 선생은 말과 소녀 앞에서 쩔쩔매는 것 같기도 하며 더욱 희멀겋고 왜소해보인다. 이야, 저런 머리를 가지고서도 저렇게 자신감이 넘칠 수 있다니. 앞으로 저 학생처럼 살아야겠다. 그러면 서류도, 꿈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 애정을 갈구하는 마음도,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도 다 필요 없어지리라. 나는 서류 요청이라는 목적을 잃고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걸어내려와 여자화장실에 들렀는데, 하필 그곳에는 날라리 무리가 있고 나는 이유 없이 괴롭힘의 희생자가 된다. 누군가가 발을 걸어 나는 칠리 소스가 가득 뿌려진 화장실 바닥에 앞으로 철퍼덕 고꾸라졌다. 맑은 칠리 소스 중간중간 고추 껍질, 고추씨가 보인다. 웃음소리와 욕설이 희미하게 공중을 날아다니고 눈 앞엔 분홍빛 타일이 입을 낼름거리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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