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베는 소리에 눈을 떴다. 잠에서 깬 지는 오래 되었고 그때 눈을 떴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지만. 집 안을 가득 채운 풀냄새는 때마침 오는 비 때문에 과장되게 다가왔다. 나른하도록 오래 지속되는 기계 소리를 들으며 아침 식사를 한다. 엔진 냄새가 섞인 풀 냄새를 빈 속에 맡으려니 속이 좋지 않다. M은 주방 창문을 닫았는데, 나는 잠깐 생각하다 그냥 원래대로 문을 여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한다. 몸에 좋지 않은 공기, 분진, 매연... 나는 늘 그런 것들을 민감하게 대했다. 음식도 신경을 썼다. 아주 많이. 그래, 그저 균형이 맞지 않은 상태가 오래되었던 거지. 자꾸만 생각이 다른 쪽으로 기우려는 것을 알아차린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언제나 그랬듯, 풀이 가득하고 나는 어제의 풀을 상상한다. 노르스름한 빛이 스민 따뜻한 연두색. 아직은 단풍이 들기 전이지만 그렇다고 여름의 녹색은 아닌, 초가을의 연둣빛. 5월의 나뭇잎들은 찰강찰강, 금속성의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움직이는 잎들은 무척 섬세해서 피아니스트의 손가락 같았지. 나는 꿈을 꾸듯 눈앞에서 짧은 필름을 하나 만든다. 그에 반해 9월의 나뭇가지와 풀은 조용한 정물이구나. 가닿고 싶다. 기우는 햇빛 나뭇잎 속으로. 풀은 어디에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가깝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식물을 구경하거나 구입하거나, 꽃꽃이를 할 때도 나는 늘 확인하려고 애썼다. 잎사귀에 닿도록 볼을 가까이 대거나 손끝으로 매만지면서. 나는 시각적인 인간이 아니다. 누군가를 마주할 때 늘 쓸쓸함을 느끼는데, 그 사람을 쓰다듬고 껴안고 냄새 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종종 홀로그램 같다. 이 사람이 정말로, 객관적으로, 우주적으로 이 곳에 있는 걸까? 나는 내 앞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흝고 싶은 충동을 참는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조금 안심이 될 것 같다. 문득 어떤 시선을 느껴 돌아보니, 탁자 저편 젊은 남자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가 꽤 한참 동안 나를 그렇게 보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 얼굴은 단 하나의 감정이면서 또한 여러가지의 감정이다. 어쩔 줄 몰라하는 젊음이면서 초로의 슬픔이었다. 먼 친척의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재회한 외숙모의 입술이었고 자신이 맡고 있는 학생들을 사랑하는 담임의 눈빛이었다. 그는 나를 애잔하게 보고 있다. 그러나 왜? 나는 입을 열어 그 얼굴을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다. 그래서 그저 가만히 보았다. 나는 이해받았다. 모르는 사람에 의해. 나를 응시하는 얼굴 하나만으로 나는 드디어 내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내 친구의 얼굴, 그 또렷하고 총명한, 살짝 슬픈 얼굴을 나는 기억해내려고 애쓴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그(또는 나)는 읽고 있던 책으로 시선을 돌리거나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할 것이다. 결국 누군가가 먼저 입술을 떼었고 그 장면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내 친구의 얼굴, 그 또렷하고 총명한, 살짝 슬픈 얼굴을 나는 기억해내려고 애쓴다. 그런데, 단지 몇 초가 지났을 뿐인데 당신을 떠올릴 수가 없다. 우리 둘 중 누군가가 몸을 약간 움직임과 동시에 내 친구는 휘발되었고 그곳엔 구별할 수 없는 여럿의 얼굴들이 어른댄다. 카페의 창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더욱이 그곳의 얼굴들을 구분할 수가 없다. 한참 눈을 감았다 가늘게 뜨니 사람들의 무리가 사막의 코끼리 떼가 되었다가, 극지방의 거대한 숲이 되었다가, 포플러나무의 잎사귀들로 바뀐다. 끝부터 노랗게 변해가는 구멍이 송송 뚫린 잎사귀들. 나를 보던 이파리는 저들 중 어떤 것이었나. 나도 저들중 하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