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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묘에서 표현이 최고조에 이를수록 연필 끝은 그 어느 때보다 예리해져야 한다. 세부적인 묘사를 통해 그림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이쯤 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지우개다. 뭉툭한 지우개를 커터칼로 날렵하게 다듬어주면 출격 준비 완료. 기껏 어둠을 만들어 놓고서는 왜 지워버리냐고? 제대로 덜어내는 순간 그림은 완성된다.
소묘를 위한 준비물은 제법 간단하다. 종이 그리고 연필과 지우개, 이들을 다듬어 줄 커터칼이면 된다. 그렇게 나는 오래전에 사둔 파버카스텔 8B 연필을 꺼냈다. 진한 어둠을 만드는데 제격일 것 같았다. 그리고는 핀터레스트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나마 그리기 쉬워 보이는 강아지 사진을 골랐다. 무언가를 올려다보고 있는 사랑스러운 표정의 강아지다.
소묘는 오로지 끈질긴 관찰과 명암으로 만드는 작은 세계다. 이 사실은 누구든지 언제라도 그림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나는 실로 오랜만에 잡은 연필임에도 불구하고 막힘 없이 그려나갔는데, 결과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던 것 같다. 불필요한 힘을 쏟는 일은 과한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것이든 타인의 것이든.
덜어낼 것은 덜어내고, 연필 끝은 그 어느 때보다 예리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