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신폭신한 와인색 러그가 깔린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티비를 마냥 본다. 더 말랑하고 편안한 소파를 두고 무기력하게 바닥에 자리 잡아 채널을 돌린다. 어딘가 지긋지긋한 마음에 이리저리 채널들을 정처 없이 떠돌다 익숙한 나 혼자 산다에서 잠시 멈춘다. 어떤 남자 배우와 그의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온다.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는 교직에서 물러나 다 큰 손자와 함께 있다.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애교로 똘똘 뭉친 말투로 조잘조잘 이야기하지만, 할아버지는 전화 받기에 여념이 없다. 어떤 이와의 전화를 끝내고 나면 또 다른 이에게 전화가 걸려 온다. 계속되는 전화 속에서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점점 행복을 표상하는 충만함이 피어오른다. 할아버지의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발신인의 목소리에서도 연륜이 묻어있다. 발신인은 할아버지에게 안부를 묻고,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건강과 안녕을 빌어준다. 할아버지도 흐릿한 목소리에 힘을 실어 진심 어린 고마움을 말한다. 발신인은 사라졌다가 새로이 생겨나는데 계속되는 덕담 속에서 어떤 추억들은 살아나고 점차 생생해진다. 한동안 훈훈한 장면이 이어진다. 전화선 너머로 오고 가는 아낌없는 마음들을 멍하니 듣다 명확한 지점으로 이동하고 싶다.
바삐 스쳐 간 시간의 흐름에서 아직 마음에 멈춰있는 이를 떠올려 본다. 빨간색 빵모자를 즐겨 쓰고 종종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던 사람. 거대한 덩치와 찰랑거리는 머리칼로 우아하게 피아노를 치던 그. 특이한 말버릇으로 종종 수업을 침범하다 곧 남다른 카리스마로 긴장시킨 분, 여긴 여전히 고교 추억 회상의 중심에 있지. 그리고 통통 튀는 팝콘 같던 우리 모두를 넘치는 사랑으로 어우르던 류 선생님. 성인이 되어서도 나를 이끌어 주신 감사한 분. 강의가 끝나면 어김 없이 장문의 응원 메세지를 전해주신 권 교수님. 경이로울 만큼 존경스러운 어른이었지. 따끈따끈한 수석 졸업장을 들고 장밋빛 얼굴로 달려간 국문학과 사무실에서 어색하게 맞아준 교수님들. 아 온도 차이 화끈거려. 문화를 다루겠다는 목표를 걱정하고, 응원하고, 길을 열어주고, 손을 잡아준 이들의 얼굴 여럿. 어떤 하나의 삶과 그에 얽힌 인연과 이야기를 새삼스레 바라본다. 어떤 지점은 달린 이야기가 촤르르 펼쳐져 배시시 웃다가도 단번에 공허해지기도 한다. 대충 감사함으로 귀결시키려다가도 씁쓸했다가 충만해졌다가 황당했다가 희망차지는 마음들이 가지를 뻗는다. 수많은 얼굴이 동시에 떠오르면서도 가장 크게 자리한 구석 자리의 얼굴은 비어있다. 얼굴 없는 은사님을 향한 공허한 기다림이 언제부터였더라.
짙은 유대감을 공유할 선생님을 찾았다. 매년 새 학기의 첫날이 되면 젊고 상냥하고 유쾌한 선생님이 천사 같은 얼굴로 문을 열어주길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꼭 나에게는 나이가 지긋하게 든 담임 선생님이 배정되었다. 그야말로 고루한 한자나 도덕을 가르칠 것 같은 이미지의 분들. 한 학년에 한 분쯤은 꼭 햇살 같은 선생님이 계셨는데도 늘 나에게는 야속하리만치 비슷한 이미지의 선생님과 연이 닿았다. 매일 푸릇푸릇하게 자라나길 기다리는 호기심 씨앗을 싹 틔워줄 선생님과는 거리가 어쩐지 멀었다.
하필 나를 빼고 지난해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끼리 같은 반이 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옆 반에서는 신나다 못해 뜨거운 열기를 잔뜩 띈 웃음소리가 찬 복도를 타고 쌀쌀하게 넘어왔다. 들어 보니 거긴 반에서 재밌는 점수 제도며 매달 재미난 자체 행사를 진행하느라 배꼽을 잡는다던데, 우리 담임 선생님은 앞으로 영어 다음으로 중국어가 뜰 것이라고 뜻도 모르는 중국 동요를 외우게 시켰다. 우리가 성조도 무시한 채 이얼싼쓰- 워아이니- 하고 흥미 없이 부르고 있노라면, 그날 하굣길엔 유독 서러움이 사무치는 것이었다. 꿈꿔온 만화영화 속의 상냥한 선생님이 나올 확률은 희박할 터였으나, 모든 행운이 자신을 향하기를 바라던 어린이는 선생님 운이 없다며 입을 삐쭉 내밀다 못해 오리가 될 것 같았다.
겉모습만 보고 고루하다며 일찍부터 재단했던 선생님들은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친절하셨다. 그러나 바르고 착한 아이와 남다르게 애정을 갖는 아이는 다른 법이었다. 전반적으로 나는 시키는 것은 착착 잘해놓는 바르고 착한 아이의 축에 속했다. 어떤 반골 기질도 없고 천성이 순해서 대체로 칭찬을 듣고 누구 하나 속 썩이지 않고 잘 지냈다. 그렇게 한 해를 마무리할 즈음엔 꼭 속만 썩이고 지지리도 말 안 듣던 뺀질뺀질한 어떤 애가 선생님의 애제자가 되어 있었다. 선생님의 옆구리에 쏘옥 붙어 있는 애들을 보면 어떤 팽창된 서운함으로 그 해를 마무리하게 되는 것이었다. 매년 혼자만의 실망으로 한해가 시작되고 그 마무리는 탄식이었으니 시작과 끝이 영 마음처럼 되지 않았던 셈이다. 그럼에도 매년 어떤 이상적인 선생님의 특별한 제자가 되고 싶었다.
“선생님!!!” 이제는 작고 어린 얼굴들이 나를 부른다. 안녕하세요. 내성적인 얼굴. 오늘 악보 안 가져왔어요. 걱정 어린 얼굴. 오늘 간식 뭐예요? 장난기 서린 얼굴. 저 시험 망쳤어요. 삐쭉대는 얼굴. 내일 학교에서 운동회 해요. 기대되는 얼굴. 저 감독님이랑 상담 안 하면 안 돼요? 불편함이 잔뜩 낀 얼굴. 제각각의 생김새와 성격이 나타난 생글생글한 얼굴들을 맞는다. 매주 일흔 명의 작은 얼굴과 목소리를 맞이한다. 그럼 나는 머리핀 바뀌었네, 잘 어울린다. 연주회 준비는 잘 되어 가? 지난주 학교에서 있던 억울한 일은 잘 해결했니? 손 다쳤다며, 병원은 다녀왔어? 일본 여행은 좋았니? 나를 보는 얼굴들에 정성껏 응한다.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얼굴들. 유독 착하고 예의 바른 어딘가 익숙한 얼굴을 향한 시선도 다시 한 번 챙긴다. 나는 어떤 얼굴을 기다리다, 어떤 이에게 다가간 얼굴이 되었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얼굴일까, 잠시 머물러 본다.
오늘도 회사에 가서 수십 명의 얼굴을 만난다. 사내 동료와 교육 참여자와 외부 협력 업체 담당자의 얼굴을 스쳐 간다. 글방에 간다. 매주 열 명의 익숙한 얼굴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울림을 얻는다. 음악을 배운다. 열정적인 가르침의 얼굴을 보고. 반가운 짝을 보고. 함께 얼굴을 마주하고 연습해 온 파트를 맞춰 본다. 교육에 간다. 열네 명의 얼굴을 마주하고 강사님의 목소리에 경청한다. 바쁜 삶의 흐름 속에서 어떤 이는 나의 선생님이고, 어떤 이는 나를 선생님이라 부른다. 선생님은 아니지만 어떤 깨달음을 주는 이도 있다. 누군가는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어떤 얼굴들이 서로 응해서 뜻하지 않은 길을 열고, 답을 주고, 해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어떤 이의 삶에 얽힌 얼굴들이 촘촘히 얽혀 있는 듯하다.
여전히 마음에 자리할 얼굴의 주인공을 찾는다. 그 얼굴의 이름은 선생님일까, 스승님일까, 은사님일까 아니면 다른 이름일까? 평범한 얼굴들이 이룬 특별한 관계를 쌓고 싶었다. 길을 잃을 때 찾아갈 얼굴, 나의 기쁨을 함께할 얼굴, 진심 어린 안녕을 기원할 얼굴이 필요하다. 이분이 나를 세우신 분이에요. 하고 소개할 얼굴을 찾는다. 그 여정의 끝에서 입이 삐쭉 나온 아기 오리는 언젠가 백조가 될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