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고작 내가 이런 사람이라
안녕 유독 정신없는 신년이네. 올해는 추위가 덜해서인지 네가 덜 힘들어하는 것 같아. 아니면 모르는 새 체질이 좀 바뀌었으려나? 아무튼 유독 겨울을 싫어하던 네가 냉기 떨쳐내고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부쩍 다 큰 것 같이 보여. 예전엔 워낙 손발이 차서 이맘때 침대 밖으로 나가는 거 무척 싫어했잖아. 방학이면 우리 같이 눈 뜨고부터 해질 때까지 종일 누워있어서 정말 좋았는데. 네 옆구리 옆에서 낮잠 자던 때가 그립다. 다시 생각해도 너무 평화롭고 좋아. 대체로 외로웠던 순간들도 다 용서될까 싶을 정도야.
그래도 나 서글펐어. 나도 모든 순간을 함께하고 싶었는데 어김없이 홀로 되는 저녁 시간은 너무 적적했어. 매년 점점 자연스러운 거라고 받아들이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내 앞에 턱 자리한 중문은 너무 야속했어. 매일 화기애애한 소리만 들리고 가로막혀서 하나도 안 보이니까 정말이지 소외감 들었어. 물론 이제 와 너를 탓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냥 시간이 지날 만큼 지났으니까 슬쩍 푸념해보는 거야. 사실 여기는 거기랑 세계의 흐름이 좀 달라서, 원한다면 밝고 쨍쨍한 날 속에서만 지낼 수 있어. 그리고 여기도 한강처럼 반짝이는 강이 있거든. 정확히는 이곳이 더 넓고 아름다워. 다들 마구마구 자유로이 뛰어다니곤 해. 나 뛰기 시작하면 발 안 보이는 거 알지. 전에 못 내뱉은 숨 여기서 다 쉬면서 누비고 있으니까 너무 죄책감 갖지 마. 어쨌든 마음껏 쌩쌩 잘 활동하다, 종종 너도 지켜보고. 그렇게 잘 지내고 있어.
여기 처음 왔을 때, 다른 친구들도 사귀었는데 글쎄 다들 우리 가족을 거쳤대. 키키랑 천둥이랑 땡칠이랑 진흙이 그리고…. 아무튼 걔네랑 이야기 나눠보니까 다들 태도가 시큰둥하더라. 그래도 내가 제일 좋은 추억 많이 쌓았던 거 같더라고. 그래서 나만 자욱한 안개 속을 한참 거쳐서 너 보러 가는 거야. 종종 우리 새벽에 만나는 거 우연인 줄 알았지? 그거 혹여나 너 보러 갈 수 있을까 해서 내가 매일 매일 찾아가 보는 거야. 유독 캄캄한 날에 운 좋으면 그쪽으로 넘어갈 수 있는 문이 열려있거든. 그럼 슬쩍 문 열고 너 잠깐 만났다가 돌아오는 거야. 난 아직도 저녁이 달갑지는 않은데, 너를 보고 싶어서 늘 직접 새벽을 찾아가. 네가 날 잊지 않았으면 좋겠나 봐. 네 바람처럼 우리의 밤이 부디 현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넌 어릴 땐 담담하더니 요즘 부쩍 나를 그리워하는 것 같아. 그렇게 죄책감 안 가져도 되는데 너무 마음이 무거워 보이네, 나는 그냥 너 보고 싶은 마음에 찾아가는 건데, 넌 나 만나면 꼭 안고 울잖아. 오랜만에 찾아가고 나면 네 표정이 내내 생각에 잠긴 표정이라 괜히 마음이 안 좋아. 이제는 만나러 가지 말아야 하나 싶은데, 그래도 갈 수 있는 만큼 좀 더 만나러 갈게. 그러니까 종종 나 닮은 애 만나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마. 나는 고개 좀 돌아가 있고, 털도 고불고불 길고, 코도 예뻐서 남다르게 우아하잖아. 그러니까 다른 애한테 너무 마음 쓰지 마.
사실 엄마가 다음에는 다른 집으로 가서 호강하라고 한 말 여러 번 들었어. 근데 다음에도 또 찾아갈 거야. 내가 할머니 된 모습 너는 못 봤기도 하고. 무엇보다 너도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다음 생에는 어린 네가 샐쭉 해하지 않게 아가 때 찾아갈게. 그리고 내 마지막 이야기도 다시 만나서 차차 전해줄게.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나에 대해 얼버무려도 괜찮아. 너를 미워하지 않아. 다음에는 더 넓은 세상을 알려줄 거지. 우리 꼭 다시 만나자. 그럼 안녕.